성공적 자유학기제의 길을 엿보다 - 경남 거창여자중학교
배승희 / 새교육 기자
서혜정 / 한국교총 한국교육정책연구소 사무국장
싸이월드 공감
“자유학기제는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이홍국 거창여자중학교 교장은 자유학기제가 교육의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1학년 1학기라는 쉽지 않은 시기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유학기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고 있는 거창여중을 지난 5월 21일 한국교육개발원의 백순근 원장과 자유학기제지원특임센터 관계자들이 찾았다.
1학년 1학기, 학생 ‘혼란’ 줄일 수 있지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두 가지 경우를 모두 생각했어요. 만약 자유학기제가 아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1년이라도 더 먼저 받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대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더라도 1학년 때 진행하는 게 맞죠. 2학년에 진행한다면 1학년 때와 다른 수업방식으로 아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홍국 교장)


자유학기제를 중학교 6학기 중 어느 학기에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지는 아직 연구단계지만, 많은 학교들은 2학년 1학기에 운영하고 있다. 거창여중 주변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이홍국 교장은 1학년 1학기 선택의 이유를 학생들이 겪을 ‘혼란’을 덜어주기 위해’라고 설명했지만, 1학년 1학기를 기피하는 이유로 제일 많이 꼽는 점 또한 ‘혼란’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현행 공립학교 운영체제상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거창여중 역시 이런 부분을 문제로 지적했다. 입학 전에 학생들을 상대로 동아리 및 선택프로그램 선호도 조사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자유학기제가 생소한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과정 등이 그 것이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어떤 교사가 어떤 프로그램을 맡을지 모른다는 점을 꼽았다. 교사 전보 등 발령이 2월 말에나 결정되기 때문이다. 3월에 바로 시행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한 셈이다. 김현숙 교사(교무부장)는 “프로그램 준비는 미리 다 해놨는데 아이들을 교육시킬 선생님이 누가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사 개인의 사정이나 강점 등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교사는 “1학년 1학기에 적용하려면 교사 발령을 좀 더 앞당겨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생·교원을 위해 시행 학기 ‘통일’ 필요
그렇다면, 언제 자유학기제를 도입하는 것이 좋을까. 1년이 지난만큼 이제는 연구학교를 운영하더라도 어느 정도 정리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자유학기제의 기본 골격은 2013년 5월 28일 ‘중학교 자유학기제 시범운영계획 발표’에 의해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13학년도 2학기에는 42개 연구학교가 시범운영을 했으며, 올해는 38개의 연구학교를 비롯해 전국 800여 개의 희망학교(전체 중학교의 약 25%)에서 시범운영 중이다.
앞으로 2015년 6월 확정·발표, 2016년 3월 전면 실시될 예정이다. 이처럼 자유학기제는 확정된 정책의 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기보다 현재는 전면 실시를 위한 틀을 강구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진로교육’ 및 ‘직업체험 활동’ 위주로 이해하는 경향(최상덕, 2014: 18-19)이 있었으나, 인수위원회 최종 보고서에는 ‘토론·실습·체험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한 학기동안 지필고사 없이 다양한 체험학습 과정과 결과를 학생부에 기록하고 단위 학교의 운영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학교교육 개혁 및 혁신의 일환으로 보고자 하는 쪽으로 정리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자유학기제를 도입하는 이유는 거창여중에서 주목한 바와 같이 중학생 연령 단계의 급격한 변화와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여 ‘전환’이 보다 부드럽고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있다. 정영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은 “자유학기를 그야말로 학교 자율로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전학이나 자유학기를 중심으로 한 전·후 학기의 교과재구성 문제 등을 감안할 때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초등에서 중학교로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가능한 한 고학년보다 1학년, 그 중에서 특히 교사의 이동 문제 등을 감안하여 1학년 2학기가 가장 적절하다는 주장이다. 거창여중 교사들 역시 ‘혼란’과 ‘전환’의 절충이라는 점에서 이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과와 예체능’ ‘수학과 사회’ 융합수업 시도
‘수동적’, ‘주입식’. 기존의 우리 교육을 수식하던 단어들이다. 자유학기제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수업보다는 교과 외의 프로그램에 더 초점이 맞춰진 탓에 학력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뒤따른다. 거창여중에서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교과수업 방식을 과감하게 바꿨다. 융합수업 모형과 Co-Teaching을 활용해 교과수업에도 학생들의 참여를 높인 것이다.
교과 간 융합수업에서 수학과의 경우 사회, 국어, 미술, 진로와 융합하는 식이다. 교사들은 수업 시기별로 주제를 정한 후 융합 가능한 교과와 단원을 모색했다. 3월 수업은 ‘위치를 나타내는 방법’을 주제로 사회 교과와 융합해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거창의 로터리를 기준으로 상점의 위치를 나타내는 활동을 통해 수직선, 좌표평면의 개념을 익히도록 가르친다. 진로와 융합한 수업도 주목할 만하다. ‘미래에는 나도 CEO’라는 주제로 창업계획을 세우기 위한 예산을 분배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거창여중 교사들은 모든 수업이 프로젝트 수업이나 모둠별 토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학생들의 참여도가 다른 학년에 비해 눈에 띄게 높다고 입을 모았다.


Co-Teaching 융합수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기본교과와 예체능교과를 융합한 점이다. 영어와 미술을 예로 들면, 인물묘사를 위한 어휘와 표현을 영어로 익히고 그림 또는 사진 속 인물들의 모습과 특징을 영어로 소개한다. 그렇게 익힌 영어 단어로 친구의 모습을 설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친구가 가진 특징을 담아 개성 있는 캐리커처를 그린다. 완성된 그림을 골판지 지지대에 붙여 세워 영어로 다른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식으로 수업은 진행된다. 영어의 4단원 ‘A New Neighbor’와 미술의 ‘친구를 캐리커처로 표현하기’ 단원을 효과적으로 융합한 수업이다. 흥미와 지식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다양한 동아리·선택프로그램, 독(毒) 될 수도
거창여중은 10개의 동아리, 9개의 선택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현재 1학년 4학급 총 124명의 학생들이 선호에 따라 선택하여 참여하고 있다. 먼저 1학기 시작 전에 학생들의 선호도 조사를 했다. 그리고 가르칠 인원이 있는가를 고려해 최종적으로 프로그램을 결정했다. 현실적으로 시행 가능한 수업을 추리되, 최대한 다양하게 마련해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보장하려 노력했다. 프로그램은 교육 기부나 외부 강사 초빙을 통해 운영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교사가 맡아 꾸린다. 지속 가능한 방법을 모색한 결과다.
현재 진행 중인 동아리에는 명화 속 이야기, 댄스, 통기타, 요리1·2, 제과·제빵, 홈패션, 농구&배드민턴, 또래상담, 퀼트 반이 있다. 선택 프로그램은 영어연극, 스토리가 있는 영어, 생활 속 수학, 과학 천적 생태, 시와 창작, 문화 답사, 학습 코칭, 컴퓨터 활용, IOC위원 키우기로 꾸렸다. 예술 및 문예, 교과, 직업 체험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소질 개발에 도움을 주는 게 목적이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IOC위원 키우기’로, 스포츠 외교관이 되는 경험을 제공하면서 사안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수업 주제로는 ‘내가 IOC위원이라면? 소치동계올림픽 평가-안현수, 김연아 현상을 중심으로’라든가, 다가올 브라질 월드컵의 핫 이슈인 ‘부부젤라, 금지돼야 하는가’ 등이 있다. 관련된 쟁점을 교사가 제시하면 찬성과 반대로 나뉜 학생들이 각각의 근거를 대고 상대 팀의 주장에 논박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토론을 마친 이후에 담당교사가 논쟁에 대한 피드백을 해준다. 평가는 토론 평가 기록지와 진로탐색 활동지를 검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다양한 동아리와 선택프로그램의 마련은 교사들의 열정과 노력 덕분이었다. 김현숙 교무부장은 “선생님들이 2, 3학년 교과준비까지 하면서 생소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많이 힘들었다”면서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자유학기제를 시행했던 여러 학교들의 프로그램을 모아 제공해 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교재연구라든지 교과수업에 쏟을 시간이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학교 자체에서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프로그램이 어느 학교든 큰 차이 없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창여중의 경우도 ‘IOC위원 키우기’를 제외하면 겉모습만으로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찾아가는 연구학교들마다 이구동성 매뉴얼을 요구한다. 이미 한국교육개발원 등에서 백과사전 같은 지원 자료들이 쏟아져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백순근 원장도 “현실적으로 단위학교 내에서 교과, 동아리, 선택프로그램을 전부 다 실시하려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많은 학교들이 자유학기제의 초점을 동아리, 선택프로그램에 맞추고 있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수업을 ‘체험·토론·문제해결형’으로 바꿔 학생과 교사의 상호작용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유학기제가 기존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단초가 되려면 수업 개선에 무게를 두는 방향이어야 한다. 연구 및 희망 학교에서 자신들의 학교 여건은 무시한 채, 책에서만 해법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백 원장이 자유학기제 연구학교 방문 시 일반화 및 교육기관 지원 자료를 요구하는 교원들에게 붕어빵 자유학기제를 우려하며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익광고 등 기업 대상 집중홍보 아쉬워
‘나의 꿈을 디자인하면 이루어진다’ 거창여중 진로교육의 슬로건이다. 부모나 교사가 제시해주는 꿈이 아닌, 학생 스스로가 꿈을 설계하고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우선 ‘커리어넷(www.career.go.kr)’을 활용해 진로심리검사를 시행했다. 흥미, 적성, 가치관, 성숙도 등을 검사한 후 ‘꿈 잡(Job)는 진로 포트폴리오’라는 책자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부했다. 나를 찾는 데서부터 꿈을 발견하고 계획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학생 스스로 그려볼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진로체험 인프라 구축에도 애썼다.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강사지원 및 교재지원은 협업기관을 활용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이 협업기관이다. 학생들의 진로체험을 위해서는 지역사회 기관의 도움을 받았다. 거창 소재의 제과제빵 학원, 경남도립거창대학, 거창승강기대학 등에서 직업 및 학과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협업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거창의 경우 대도시로 나가려면 적어도 두 세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대부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종철 진로교사는 “지원청에서 기업과 MOU 체결을 추진하면 공기업은 대부분 응해는 준다”면서도 “방문했을 때 기업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자세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토로했다. 박 교사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안전문제가 대두되면서 참여를 거부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난 점도 힘든 부분”이라고 짚었다. 거창교육지원청 김회정 장학사는 이에 대한 원인을 홍보 부족으로 꼽았다. 김 장학사는 “교육공동체뿐만 아니라 범부처 차원에서 적극적 협조가 가능하도록 자유학기제, 체험학습에 대한 집중적 홍보가 필요하다”면서 “공익광고 형태가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사들도 행복한 자유학기제를 위하여!
“선생님들이 굉장히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열정과 변화가 지속되려면 업무량의 과부하를 줄여 줘야 가능합니다. 이 점을 꼭 유념해서 개선책을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홍국 교장이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이다. 자유학기제 연구학교 교원들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나올 때면 언제나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자유학기제의 성공여부는 ‘교사가 자유학기제의 교육적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교사들의 볼멘소리들이 현장에서 들려온다. 학교평가에 블록타임 수업 ○○시간 이상 실시, 진로교육의 필수 운영프로그램 포함 등등…. 각종 평가에 관련 과제가 슬금슬금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평가보다 그야말로 지원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의욕적으로 수업을 바꿔 나가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거창여중 교원들을 비롯한 중학교 교사들의 모처럼의 의욕을 꺾지 않으려면 말이다.
▲ TOP 싸이월드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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