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대학, 도전과 과제 : 연세대학교 레지덴셜 칼리지 교육
이병식 / 연세대학교 글로벌고등교육연구센터 소장 싸이월드 공감
Ⅰ. 들어가며
주변을 둘러보면 대학만큼 같은 이름으로 오랫동안 생존하고 있는 사회조직은 매우 드물다. 사람은 기껏 100년 정도를 살고 자기가 다니는 대학에서 수 년 정도의 경험을 하는 것이 전부며, 동문이나 학부모로서 가끔씩 대학을 다시 방문할 뿐이다. 최근에는 돈벌이를 하려는 언론사 덕분에 대학 순위가 일간 신문에 여러 면을 차지하면서 예전보다 대학 이야기를 좀 더 자주 접하기는 하지만, 세상을 좀 살아본 사람들은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 것처럼 사회조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대학도 그렇다. 잘 변하지 않는다. 약 천 년 전에 마의태자가 꽂아 놓은 지팡이가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 속의 그 은행나무만큼 오래된 대학인 옥스포드도 크기는 커졌으나 예나 지금이나 하는 일이 별반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스무 해를 넘겨서 다시 돌아온 모교에도 새로운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교직원들은 더욱 바빠지고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다양한 언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예전에 비해 더 빈번히 볼 수 있기는 하지만, 교실 안팎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최근 몇 년 전까지는. 이렇게 변화에 느리다보니 대학 안팎에서 대학교육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학졸업생을 채용하는 사람들은 졸업생들이 쓸 만하지 않다거나 사람 됨됨이(인성)가 모자란다거나 하는 불평을 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학생은 학생대로 대학교육의 가치에 대해 회의적이 되고, 급기야는 대학교육이 반값 정도면 좋겠다고 외치고 있다. 이러한 우리 대학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도 여러 가지 당근과 채찍을 써가며 대학의 변화를 다그치고 있고 대학도 나름대로 변화를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우리가 바라는 변화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하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그럴듯한 명분과 구호보다도, 학생들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학생들이 교육활동에 투입할 수 있는 추가시간과 교실에서의 지식습득을 넘어선 새로운 교육경험이다.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핵심적 요소가 최근까지 우리나라 대학에는 없었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여전히 오랜 시간을 길거리에서 소모해 왔고 학교 기숙사나 대학 주변에서 숙식을 해결해 왔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근대대학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한결같은 모습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 주지 않고는,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시간을 새로운 교육경험들로 채워주지 않고서는 학생들의 변화 더 나아가서 대학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연세대학교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레지덴셜 칼리지(RC) 교육은 우리나라 대학교육에 진정한 변화를 줄 수 있는 그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물론 RC교육은 우리가 처음 시도하는 것은 아니고, 외국의 명문 대학들이 이미 앞 다투어 시행하고 있다.
Ⅱ. 서구적 레지덴셜 칼리지의 기원과 현대적 모형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레지덴셜 칼리지라는 용어는 다소 생소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전문대학의 영어이름에 칼리지를 붙여서 불러왔고 대학교에 여러 개의 칼리지들이 있듯이 학사단위로서의 단과대학에 칼리지라고 이름 붙이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칼리지 앞에 레지덴셜을 붙이면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했던 개념과는 다른 칼리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낯설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레지덴셜 칼리지를 우리말로 기숙형 대학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마도 재수생을 둔 경험이 있는 학부모들은 기숙형 학원을 떠올리면 밤낮없이 공부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대학이 시작된 중세 유럽의 칼리지를 생각해 보면, 이들이 역사적으로 경험한 칼리지는 숙식도 가능한 곳이었으므로, 이러한 서구적 칼리지 모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칼리지를 사용하는 방식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통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 명문 대학이라고 하면 쉽게 이름을 떠올리는 하버드대학이나 예일대학들도 그리고 최근에는 신흥 명문으로 자리 잡은 싱가포르국립대학도 레지덴셜 칼리지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 하버드대학의 경우를 보면, 하버드는 1학년 학생들끼리만 생활할 수 있는 공간(Yard)을 따로 만들고 이들을 위한 학장(Dean)을 별도로 두어 학업과 생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1학년 학생들이 머무르는 공간은 대학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데, 이들은 독립적인 공간에서 고학년들의 텃세로부터 자유를 누리며 지도교수들과 함께 생활하며 대학생활 적응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1학년 학생끼리 관심과 흥미에 따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기회를 얻는다.
Ⅲ. 연세 레지덴셜 칼리지의 시작과 과정
연세대학교가 지향하는 레지덴셜 칼리지 교육은 학생들에게 단순한 거주공간이던 기숙사를 생활체험교육의 공간으로 만들어서, 주간의 학습활동과 방과 후 공동체 활동을 융합한 통합형 교육체제로서 창의적 역량을 갖춘 섬김의 리더를 육성하는 명문 교육이다. 이러한 레지덴셜 칼리지(RC)는 인천 송도의 국제캠퍼스 조성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시되었다. 수년간의 준비작업을 거쳐 정갑영 총장의 취임과 더불어 본격화되었는데, 2012년에 7개 단과대학의 560명을 시작으로 2013년에는 1학년 전체(약 4,000명)를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한 학기씩 RC교육에 참여했고, 2014년부터 음악과 체육계열을 제외한 모든 신입생들이 일 년 동안 국제캠퍼스에서 RC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Ⅳ. 레지덴셜 칼리지의 교육과정 :인성과 전인교육 강화, 학습과 생활의 연계
RC교육은 정규교육과정과 비정규교육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정규교육과정에는 전인교육을 위한 교육과정과 더불어 성공적인 대학생활과 미래 학업계획 설계를 위한 연세 RC101이 있다. 보다 세부적으로 전인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은 사회기여, 문화예술, 체육의 세 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학년 학생들은 이 중 최소 2개 영역에서 각 1과목씩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정규교과 이외에 비정규 교육프로그램에는 신입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하우스별로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학생들은 자신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신입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은 정규 교육과정(HE1,2,3)과 연계될 수 있도록 학술제, 문화예술제, 체육제로 이루어져 있다.

하우스별로 운영되는 프로그램들은 개별 하우스가 추구하는 철학과 테마를 구현할 수 있도록 레지덴셜 마스터와 조교들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4년 현재 12개의 하우스가 있는데, 이 가운데 윤동주 하우스와 아리스토텔레스 국제 하우스의 프로그램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Ⅴ. 레지덴셜 칼리지의 운영조직
레지덴셜 칼리지의 운영은 학부대학에 속해 있는 RC교육원 원장이 총괄하며, 12개의 하우스별로 레지덴셜 마스터(교수)들이 하우스를 운영한다. 각 하우스별로 15명 내외의 레지덴셜 조교(1인당 20명 내외의 학생을 담당)들이 기숙사에 상주하며 학생들의 생활 지원과 마스터 교수들을 도와 교육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을 지원한다. 또한 영어교육을 강화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영어 레지덴셜 펠로우 3명도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
Ⅵ. 새로운 실험의 성공을 위한 과제
연세대학교의 새로운 시험은 성공적으로 시작되었다. 서울대, 서강대, 중앙대, 이화여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들이 새로운 도전에 동참하기 위해 연세대학교의 RC모형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연세 RC교육이 성공한다면,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연세 RC교육은 성공할 수 있는 DNA을 갖고 있다. 아직 성과를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 RC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은 분명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고 그 시간을 새로운 교육경험에 투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성을 갖춘 훌륭한 인재들이 보다 많이 배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연세대학교의 RC교육이 혁신적 모형으로 다른 대학에 전파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적지 않다. 우선, 연세 RC모형은 비용이 많이 든다. 새로운 캠퍼스를 구축하는 비용이 막대하다. 지리적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 신촌캠퍼스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50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인천의 새 캠퍼스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추가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반대로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의 시간은 줄고 있다. 대형 리스크에도 취약하다. 관련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이 24시간 모여서 생활하기 때문에 안전과 신체 및 정신건강과 관련된 위험요인이 적지 않다. 또한 대학에서 첫 일 년은 학생의 성장과 발달 측면에서 볼 때 대학 수학기간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임에는 틀림없지만, 1학년들끼리만 생활하는 데서 오는 인적 네트워크와 사회문화적인 단절은 또 다른 문젯거리다. 1학년에 국한된 RC교육의 효과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지속되지 못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RC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재정적인 어려움이 없는지도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대학등록금이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고, 생활비조차 지원받기 어려운 학생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 없이 교육적 이상만을 위해 이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RC교육이 대학생들을 어떻게 바꿀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고 과학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 그 효과를 판단할 수 있지만, 대학의 입장에서 여건만 된다면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도전이다. 운영과정에서 너무 지나치게 경제논리가 교육논리를 억누르지 않는다면, RC교육은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기에 충분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RC교육에 집중할수록 우리나라 대학들은 보다 이상적인 모습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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