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학교폭력 뿌리 뽑는 풀뿌리 프로그램 '평화샘 프로젝트' - 서울 매봉초등학교
김경학 / 경향신문 기자 싸이월드 공감
'평화샘 프로젝트'란?
'예전에는 따돌림 받고 떠들어도 샘(선생님)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근데 6학년이 돼서 따돌림이나 놀리는 학교폭력이 줄어드는 것 같고, 샘들이 많이 도와줘서 마음도 통쾌하고 살 맛이 나는 것 같다. 예전엔 맨날 학교폭력을 당해서 지겹고 익숙해질 정도로 많이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하나 밖에 없는 친구를 떠나게 만들었다. 그치만 지금이라면 그런 것이 다시 일어나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화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 개봉동 매봉초등학교 6학년 1반 윤성호 군(가명·12)이 지난 5월 남긴 글이다. 윤군은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왕따'보다 더 심각한 '전따(전교생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였다. 윤군이 이 같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평화샘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평화샘 프로젝트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학교폭력 방지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노르웨이의 올베우스 프로그램과 핀란드의 키바 코울루 프로젝트를 토대로 한국적 특성에 맞게 재구성한 프로젝트다. 평화샘이라는 이름은 평화로운 교실을 지향하는 '샘(선생님)'이라는 뜻과, 땅속에서 물이 솟는 샘처럼 평화의 원천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문재현 마을공동체연구소 소장은 "두 아들이 학교에서 폭력을 당한 후 다양한 사례, 특히 북유럽 여러 나라의 이론과 실천적 경험을 연구하고 한국사회에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하면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역할극' 통해 피해자·가해자·방관자 등 서로의 감정 느껴
지난 5월 7일 평화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서울 매봉초등학교 6학년 1반을 방문했다. 민방위 훈련이 있던 이날 학생들은 야외훈련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왔다. 교실로 들어온 학생들은 첫번째 역할극을 시작했다. 역할극은 피해자·가해자·동조자·방관자·방어자 등 각자의 역할을 나눠 진행한다.

피해자 역할을 자청한 조승현 군(가명)이 교실 밖으로 잠시 나갔다 들어왔다. 가해자를 자청한 김준호 군(가명)이 조군을 향해 '찐따(못난이라는 뜻의 속어)'라고 부르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모른 척하는 방관자 역할을 담당했다. 피해자 조군은 "때려 죽이고 싶었는데 힘이 없어서 못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해자 김군은 "통쾌하고 괴롭히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두번째 역할극에는 가해자의 폭력을 저지하는 방어자 역할을 자청한 최재석 군(가명)이 등장했다. 가해자 역할인 김군은 첫번째 역할극보다 다소 위축돼 보였다. 피해자 조군은 "(최군이) 고맙기는 한데 (최군이) 같이 당하니 미안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군은 "조금 빡친다(화가 난다). 놀리는데 옆에서 막으니까 놀릴 재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역할극이 반복될 때마다 방어자의 수를 늘려 갔다. 방어자 수가 5명 정도로 늘어나자 김군은 "당황스럽다. 이 행동을 계속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역할극은 멈춰제도·4대 규칙·학급 카스트 등과 함께 매우 중요한 평화샘 프로젝트의 구성요소 중 하나로, 멈춰제도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멈춰제도는 폭력을 당한 아이가 '멈춰'를 외치면, 규칙에 따라 괴롭히는 아이는 그 행동을 즉시 멈춰야 하는 제도다. 폭력을 당한 아이가 멈춰를 스스로 외치지 못할 경우, 주변의 아이들이 참여해 함께 멈춰를 외친다. 누군가 멈춰를 외치면 교사를 포함한 학급 전체가 긴급 학급회의를 소집한다. 공동체 구성원 중 한 사람의 아픔도 공동체 모두의 아픔이기 때문에 단 한사람의 요구에도 긴급 학급회의를 여는 것이 원칙이다.

긴급 학급회의에서는 역할극을 통해 상황을 재연하고, 입장을 바꿔보면서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말로 상황을 설명하다보면 말을 잘하는 학생의 의견이 강하게 전달돼, 학급 친구들이나 교사가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재연을 하면 실제 상황과 유사하게 파악할 수 있다.

역할극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서로의 역할을 바꾼 뒤 상황을 정확히 재연하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들은 재연 상황을 관찰하며 '폭력에 대처하는 4대 규칙' 중 어느 것을 위반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폭력에 대처하는 4대 규칙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들을 도울 것이다.' '우리는 혼자 있는 친구들과 함께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괴롭힘 당하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학교나 집의 어른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6학년 1반 담임교사인 이인찬 씨(29)는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 인성교육이니 뭐니 해도 아이들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학교에서 신경을 쓰고 노력을 해도 어느 곳에서는 여전히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나온다. 소식을 듣고 좌절을 많이 했다. 선생님을 하면서 힘들었던 게 만연해 있었다. 멈춰제도, 4대규칙을 하면서 아이들의 변화가 보였다. 이게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학급 카스트'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
평화샘 프로젝트에서 학급 카스트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인도의 신분제도에서 이름을 따온 학급 카스트는 피라미드가 그려진 종이를 주고 교실 내 서열을 도식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씨는 학생들에게 학급 카스트를 그려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비어 있는 피라미드를 저마다의 서열로 채웠다. 칸 수를 4칸으로 나눈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둘로 극명하게 나눈 학생들도 있었다. 이름 옆에 이유도 적어 나갔다. 학생들은 '폭력을 많이 쓴다' '매일 욕을 하며 맞짱을 뜨자고 한다' '무조건 폭력으로 해결한다' 등을 써내려갔다.

카스트를 모아보니 일련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가장 상위에 있는 학생과 가장 아래에 있는 학생은 대부분 유사하게 나왔다. 가장 상위에 이름을 많이 올린 학생들에게는 나름의 공통점이 있었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이씨는 "카스트의 위에 위치해 있는 아이들은 모두 가정에서 보살핌을 못 받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환경에 있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아이들을 잘 못 챙기고,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는 체벌로 변화시키려고 하거나 억압적으로 양육하는 분들이었다. 이렇게 가정에서 부모에게 약자인 아이들은 학교에 오면 자신들이 강자가 되니 가정에서 자신이 당한 것을 다른 아이들(약자)에게 그대로 행한다"고 말했다.

특이한 학생도 있었다. 조주환 군(가명)이었다. 학급 학생들 절반은 조군의 이름을 최상의 위치인 꼭대기에 적었고, 나머지 절반은 조군의 이름을 가장 아래에 두었다. 평범하게 여기던 조군이 절반의 학생들로부터는 괴롭힘을 당했고, 괴롭힘을 당한 것을 나머지 절반에게 그대로 괴롭힌다는 사실을 이씨는 카스트를 통해 알게 됐다.

학급 카스트를 칠판에 적어 공개하자 상위에 위치한 학생들은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이씨는 "카스트를 공개하자 가장 위에 위치한 아이들은 억울함과 분노, 일부는 수치심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런 아이들에게 '너희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돕고 싶어 카스트를 공개했다'고 카스트 공개의 취지를 꼭 정확하게 설명을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른 피해자를 만들게 된다."고 말했다.
'학부모의 공감'이 절대적으로 필요
이씨는 평화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왕따나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공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학교에서는 체벌을 못하게 하는데 집에서는 잘못된 게 있으면 체벌을 받아 아이들이 혼란을 겪는다. 분명 가정과 학교가 힘을 합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소통이 안 돼 한계를 느낀다. 부모와 자녀 간의 평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학부모를 학교로 초청했는데, 생계형 맞벌이 부모들이 많아 4명 밖에 참여하지 않았다. 비록 4명 밖에 없었지만 직접 참여해 역할극을 한 부모들은 다들 이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매봉초 6학년 1반 교실 뒷문에는 '꽉찬 1기, 급훈 영원한 평화'라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씨는 "이인찬이라는 내 이름을 활용해 '사랑 찬', '지혜 찬', '평화 찬' 교실을 같이 만들기 위해 우리 반 이름을 '꽉찬 1기'로 정했다. 기수를 정한 것은 아이들에게 소속감을 주고 앞으로 1기에 이어 2기, 3기들도 계속 나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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