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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과목에 '인성교육' 편성 실험 - 인천 송도고등학교
김도형 / 동아일보 기자 싸이월드 공감


'사람이 먼저 되라' 지난 4월 22일 찾아간 인천 연수구 송도고에는 입구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올해로 개교 107년을 맞는 학교의 교훈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운동장에서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대체로 아주 짧았다. '옛날 학교'의 '옛날 학생' 같다는 느낌이었다. 올해부터 학교의 정규 시간표에 인성교육 시간을 집어넣고 교육을 하기로 했다는 학교의 모습을 살펴보러 간 길이었다. 송도고 1학년 전교생은 올해부터 매주 화∼금요일 5교시에 인성교육 수업을 듣고 있다.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인성교육을 넣어 가르치는 일은 드물다.
'수업' → '토론' → '정리'
이날 오후 1학년 7반 교실에서는 토론이 한창이었다. 주제는 '낙태는 허용되야 하는가'. 1주일 단위로 진행되는 송도고 인성교육에는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과정. 송도고는 매주 한 가지 주제를 익히면서 화요일에는 먼저 학교에서 마련한 동영상을 함께 본다. 동영상은 국내 방송사들이 방영한 내용들 가운데 해당 주제에 적합한 내용들로 마련했다.

이어 수요일, 목요일에는 동영상 내용을 놓고 이날처럼 학생들끼리 토론을 벌인다.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동영상과 토론 내용,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한다. 이날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찬성과 반대로 나눠서 자리도 새롭게 배치한 학생들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는 행복하게 자라기 힘들다'는 이유로 낙태의 필요성을 역설하거나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태아라고 부르기 힘든 상태의 생명체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로를 설득했다.

물론 쉽게 결론날 수 없는 주제. 40분 가까이 토론했지만 학생들은 계속 새로운 이유를 들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웠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신승호 군(16)은 "사실 평소에는 이런 문제를 생각할 이유도 시간도 없다. 이런 상황이 주어지니까 생각도 정리해보고 생명존중이나 학교폭력 문제 등을 고민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수업을 이끈 한인수 교사는 "인성교육의 영역이 넓기 때문에 오늘 같은 주제나 안락사 등에 대해서도 토론을 한다."며 "상당한 지적 능력을 갖춘 고등학생은 윤리적인 주제나 사회적인 주제 등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게 하는 것이 좋은 교육방법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천 기록 남기며 스스로 점검
이날의 토론은 시각에 따라서는 일반적인 도덕이나 윤리 수업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송도고의 인성교육은 동영상 수업과 토론에 그치지 않는다. 교사는 학생이 토론하고 글 쓰는데 이어 스스로 느낀 점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챙기기 때문이다. 학교가 제작한 별도 책자에서 스스로의 행동을 점검하도록 하고 월요일에는 담임교사가 하나하나 확인한다. 배운 내용을 작은 실천으로라도 이행해야 한다는 점에 학생들도 공감한다. 최근 심각한 학교폭력 등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이런 과정에서 길러진다. "신체적 폭행은 시간이 지나면 아픔이 가시지만 언어폭력은 피해자 가슴에 비수가 꽂히듯 큰 상처를 주고 그 상처가 오래간다.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욕하며 '장난인데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는 욕을 하지 않고 학교폭력 문제에서도 약자를 위해 노력해야겠다."

1학년 조준영 군(16)의 글이다. 별도의 학교폭력 교육을 받으며 써낸 글이 아니다. 학교 인성교육 수업에서 언어폭력의 문제점을 배우면서 느낀 점을 적었다. 다른 학생들이 다양한 주제를 놓고 고민한 흔적도 살펴볼 수 있었다. 3주째 주제(더불어 사는 사회의 조건)를 공부한 박정현 군(16)은 "중학교 2학년 초에 친구가 사소한 시비로 폭행을 당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 피해가 돌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앞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든 먼저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썼다. 김승현 군(16)도 6주째 주제였던 '인사와 언어 순화'와 관련해 이렇게 다짐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에 예절을 지켜야만 한다는 점을 배웠다. 아는 어른과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에게까지 먼저 인사하지는 못했다. 다음부터는 고쳐야겠다."
모호한 인성교육의 틀을 새로 마련
최근 학교폭력 문제로 인성교육을 유난히 강조하지만 예체능 활동이나 캠페인, 캠프 같은 일회성 행사를 빼면 실질적인 인성교육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송도고에서 인성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했을 때 부딪힌 문제도 같았다.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방법은커녕 무엇이 인성교육인지 정확한 정의조차 내리기 힘들었다.

결국 송도고는 지난해 9월부터 4개월 동안 김연호 교사(53)를 비롯한 교사 5명이 매달려 25주 동안의 교육계획을 새롭게 만들었다. 도덕과 윤리 측면에서의 인성, 민주시민의 자질 측면에서의 인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필요한 교양 등 3개 영역을 중심에 놓았다. 미국의 한 윤리교육 전문단체가 인성교육의 구성요인으로 △신뢰 △존경 △책임감 △공정성 △배려 △민주시민의식 등의 6가지를 설정한 것을 참고했다.

구체적으로는 정직 생명존중 예절 경로효친을 윤리·도덕 영역에, 준법정신 질서의식 정의감 평등의식을 민주시민의 자질 영역에 포함했다. 봉사정신과 협동정신 애국심 존중 배려 책임감을 공동체 구성원의 교양으로 넣었다. 이를 바탕으로 △예절 △준법의식 △환경보호의식 △학교폭력 예방Ⅰ·Ⅱ △질서의식 △봉사의식 △생명존중Ⅰ·Ⅱ △절제 △인터넷 중독 예방 등의 영역에서 25개 주제가 만들어졌다. 김 교사는 "아예 새로운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일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동영상 수준을 선택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 덕택에 생소한 인성교육이지만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최근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48.7%의 학생이 '인성교육에 바람직한 프로그램'이라고 응답했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학생이 13.5%인 것에 비해 4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유재천 군(15)은 "학교폭력이나 금연 등에 대한 내용이 교과서 안의 얘기보다 생생해서 재미있었고 스스로의 행동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인성교육 인증제'로 대입에도 활용
대학 진학에 가장 신경 써야 할 고등학교가 인성교육에 시간을 들인다는 시선을 피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송도고가 1년 과정을 '인성교육 인증제'로 운영해 인증서를 발급하고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입시에서 제시할 만한 비교과활동 중 하나로 만든 셈이다.

지금의 1학년 학생이 2학년이 되면 송도국제도시에 걸맞게 '국제사회의 이해'를 주제로 수업을 한다.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슈, 즉 △정치 △경제 △환경 △국제분쟁 △식량문제 등의 내용들을 1학년때처럼 교육시킨다는 계획이다. 인성교육의 범위를 넓히자는 취지. 새로 입학하는 1학년 학생들은 선배들과 마찬가지의 인성교육을 받는다. 3학년 때는 2년 동안 진행한 인성교육 토론수업을 면접과 논술교육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 같은 인성교육의 틀을 짠 사람은 건국대 교육공학과 교수와 교육대학원장을 지낸 오성삼 교장이다. 오 교장은 지난해 9월 정년퇴임하면서 인천 송도고로 부임했다. 이날 학교에서 만난 오 교장은 인성교육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는 그동안 계속 있었지만 실제로는 가장 뒷전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마련된 적이 없는데다 입시교육에 밀렸다는 것.

"인성을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미국은 학교에서 시민의식을 공통으로 가르친다. 기본적 윤리의식이나 전통적 충효사상과 더불어 공동체와 시민으로서의 기본적 소양은 반드시 학교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옛날부터 당연히 학교에서 했어야 하는 일을 이제야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이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인성교육을 막연하게 강조하는 데서 벗어나 정규 수업시간까지 활용하는 적극적인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호응하고 있다. 김경근 고려대 교수(교육학과)는 "최근 명문대 입학생마저 인성 면에서나 사회성 면에서 기본적 자질이 부족한 때가 많다."며 "초·중·고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인성을 기르는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도고의 '인성교육 인증제'는 최근에 진행된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의 제1회 인성교육프로그램 인증 공모전 최종 심사에서 23개의 공식 인증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으면서 전국에 보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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