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이월드 공감
중간고사 대신 진로탐색…" 꿈을 디자인해요" - 서울 연희중학교
김수현 / 국민일보 기자 싸이월드 공감

"얘들아, 너희는 디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인생이요." "삶의 모든 것이요." "장난감이요."
지난 5월 2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15층 디자인경영센터 대회의실. '디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박수진 삼성전자 디자인센터 책임의 말에 여기저기서 뜻밖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갤럭시 S'시리즈, 보르도TV 등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제품들의 디자인을 탄생시킨 디자인경영센터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외부인이 들어온 건 센터가 생긴 이후 처음이었다. 이날 중간고사를 보는 대신 삼성전자로 직업체험활동에 나선 서울 연희중학교 1학년 학생 33명은 난생 처음 '디자인과 기술의 융합'에 대한 PPT를 보며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전자에 꼭 와보고 싶어 신청했다."는 김량현(13) 군은 "자유롭게 바닥에 둘러앉아 디자인과 기술의 융합을 토론하는 PPT속 MIT 미디어랩의 모습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말했다.

친형을 따라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라는 이유빈(13) 군은 "한식과 양식이 결합돼 퓨전음식이 되는 사진을 보며 디자인과 IT기술이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니 너무 재미있다."며 "앞으로 패션 디자인에도 IT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중간고사 대신 직업체험…"나도 삼성전자 취직하고 싶어"
이어 19층 디자인정보자료실에 도착한 학생들은 탁 트인 전망 속 디자인에 관한 각종 책들과 DVD로 가득한 공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디자인정보자료실 백진경 사서는 "이곳은 늘 새로운 디자인을 고민하는 디자이너들을 위해 설계된 맞춤 도서관"이라며 "디자이너들의 자유롭고 창의로운 생각을 돕기 위해 바깥을 시원하게 내다볼 수 있는 큰 창과 숲 속에서 가져온 듯한 큰 나무도 갖다 놓았다."고 설명했다.

테이블에 놓여 있던 영문 디자인 서적을 들춰보던 이재헌(13) 군은 "사무실하면 딱딱한 책상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카페 같은 곳에서 여유롭게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몰랐다."며 "평소에 휴대폰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많은데 나중에 삼성전자에 꼭 취직하고 싶다."고 말했다.학생들과 함께 직업체험에 참여한 김용구 연희중 교사는 "중간고사 대신 직업체험을 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학부모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렇게 현장에 나와 보는 것이 장차 학생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며 "평소에 까불기만 했던 학생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놀랍기도 하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날 하루 종일 학생들에게 회사 곳곳을 견학시키며 학생들의 '꿈 멘토'로 나선 삼성전자 홍보팀 석원기(33) 씨는 "저도 중학교 1학년 때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해봤을 것."이라며 "꿈 멘토 역할을 하다보니 나 자신이 중학교 1학년 때 가졌던 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배우·바리스타·경찰 되고 싶어요"…연희중 310명 66곳에서 진로·직업 체험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 연구학교로 선정된 연희중은 이날 1학년 310명이 참가한 '청소년 진로직업체험의 기적' 행사를 서울 66곳에서 진행했다. 연구학교로 선정된 서울지역 11개 중학교의 1학년 학생들은 지난 3월부터 50일 간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각종 직업을 체험하고 진로를 탐색한다. 학생들은 이날 3~10명 단위로 그룹을 이뤄 박물관, 동물병원, 카페, 은행, 장애인 재활센터, 약국 등 다양한 일터를 체험했다.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장래희망 1위로 꼽히는 '연예인' 지망 학생 10명은 서울 여의도동 탑스타 연기학원을 찾았다. 학생들은 발성 연습과 대본 읽기를 처음해 보는 탓에 처음에는 쑥스러워 하며 나서기 꺼렸지만, 점차 흥미를 붙이면서 멘토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바리스타를 체험해 보려고 서울 북가좌동의 커피 전문점을 찾은 학생들은 원두가 커피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배우고 자신이 마시고 싶은 커피를 만들어봤다. 5명의 학생은 바리스타 멘토 주변에 모여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뒤 직접 커피와 우유 등을 섞어 카페라테나 캐러멜 마끼아또를 만들었다. 어떤 커피를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커피가 가장 잘 팔리는지 등 소소한 질문부터 바리스타가 되려면 어떤 학과를 가는 것이 좋고 필요한 자격증은 무엇인지 등 질문이 이어졌다.

서대문경찰서 남가좌파출소를 찾은 5명의 학생은 가스총과 수갑 등 경찰 장비 사용법을 배웠고 직접 수갑을 차보기도 했다. 학생들은 '남가좌동에 버려진 오토바이가 있다'는 가상의 상황으로 신고를 받은 뒤 순찰차 모니터에 현장파견 지령이 떨어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장래희망이 경찰이라는 황문경 양은 "직접 무전도 해보고 순찰차를 타고 지역을 돌아보니 매우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날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서 열린 직업체험 교육 프로그램에 참관했던 문용린 교육감은 "학생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꿈이 생기고 영글어가길 바란다."며 "단순히 체험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피드백을 통해 직업체험 프로그램을 더욱 심화·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지역 11개 연구학교 선정…진로교육 프로그램 확충·형평성 확보 등은 과제
서울시교육청이 문용린 교육감의 핵심정책인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 시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연구학교의 운영결과를 분석·평가해 내년부터 일반화한다는 계획이다. 시교육청이 선정한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 연구학교는 동대문구 숭인중, 양천구 신서중, 서대문구 연희중, 강남구 세곡중, 영등포구 당산중, 동작구 사당중, 노원구 신상중, 성동구 마장중, 용산구 한강중, 성북구 북악중, 강동구 강일중 등 11개교다. 연구학교는 지난 2011년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해 23개교가 참여했던 '청진기'(청소년 진로직업체험의 기적)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직업체험 교육을 진행할 방침이다. 일-배움-미래설계가 연계된 '청진기'는 사전교육-체험-사후교육-상담으로 이어지는 4단계 프로그램으로, 서울시교육청이 독창적으로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중학생 직업체험 과정이다.

연구학교는 이와 함께 '진로와 직업' 과목을 중학교 1학년에 편성해 연 34시간 이상을 운영할 예정이다. 진로 관련 수업 시에는 체험·활동 중심으로 운영해야 하며 자기주도적 진로개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진로설계 수업을 해야 한다. 교사들은 일반 교과의 내용 속에 포함돼 있는 진로교육적 요소를 부각해 교과의 목표와 진로교육의 목표가 함께 달성될 수 있도록 연계해 교육하고 수행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중간고사(지필평가)는 시행하지 않으며 학기 중 수행평가와 기말고사(지필평가)를 합산해 성적을 산출한다. 기말고사는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줄이기 위해 '필수학습요소'만 평가하는 방향으로 출제하고 단원을 수행평가, 지필평가로 분류해 시험범위를 축소하게 된다.

수행평가는 학기말 성적의 50% 이상, 과목별 학기말 성적의 10~15% 정도를 진로탐색 관련 수행평가로 실시하며 단계적으로 비율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토론, 협동학습, 체험 등 과정 중심 수행평가를 실시하며 직장체험 과정 관찰, 멘토에게 편지쓰기, 포트폴리오 등 진로직업체험 활동에 대한 교과통합적인 수행평가를 실시하게 된다. 그러나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가 가진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교 현장을 중심으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진로·체험 위주 교육이 한 학기만으로 끝나고 나머지 학기에 일절 중단되면 성장과정에 따라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과정이 단절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말고 진로교육 프로그램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입학한 중학생부터 중1 내신 성적이 고교 입시 내신에 반영되는 만큼, 고교 입시 내신 산출에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중1 자녀를 두고 있는 한 학부모는 "아이가 중간고사를 보지 않아 좋아하긴 하지만 그에 따라 기말고사 출제범위가 넓어져 학습부담이 만만치 않다."며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가 선행학습 혹은 사교육 학기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교육당국이 더 신경을 써야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 TOP 싸이월드 공감
서울특별시 서초구 바우뫼로 1길 35(우면동) 한국교육개발원 keditor@kedi.re.kr Tel.02-3460-0319 Fax.02-3460-0151
ⓒ KOREAN EDUCATIONAL DEVELOPMENT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