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이월드 공감
산과 들이 칠판이고 책상 …서울에서 전학생 몰려 - 시골학교의 기적
: 춘천 금병초등학교
김연주 / 조선일보 기자 싸이월드 공감
"면온초 기억나지? 폐교될 뻔 하다가 교장 덕분에 살아난 곳. 그 교장이 다른 학교에 갔는데, 거기도 또 살렸대." 지난 4월 한 취재원의 전화를 받고 귀가 번뜩 뜨였다. 면온초는 강원도 평창에 있는 시골학교인데, 한때 폐교위기까지 갔다가 학교장의 힘으로 전국에서 학생들이 전학 오는 곳으로 바뀐 곳이었다. 당시 '시골학교의 기적'으로 불리며 조선일보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당장 당시 교장이 누군지, 어디로 부임했는지 수소문했다. 당시 면온초 교장은 현재 춘천의 '금병초'에 있었다. 금병초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10년 전만 해도 학생 수가 510명에 달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2009년에는 학생이 달랑 50명 남았다. 그런 학교가 2010년부터 되살아나기 시작해 올해는 학생 157명이 다닌다. 이 중 학교가 위치한 신동면에 사는 학생은 30명뿐. 나머지는 서울 등 수도권, 춘천 시내 등 외지에서 전학 온 학생들이다. 비결이 뭘까.
김유정문학촌·금병산이 운동장
금병초를 살려낸 주인공은 3년 전 부임한 서대식(59) 교장이다. 올해로 교육경력 39년차인 서 교장은 금병초 이전에 다른 학교를 살린 성공스토리를 갖고 있다. 바로 강원도 평창의 면온초등학교다. 시골의 면온초는 2003년 전교생이 21명에 불과했다. 학교를 폐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던 2006년 서 교장이 부임했다. 서 교장은 학교를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방과후 수업을 개설했다. "누구나 좋은 교육을 하는 학교에 보내고 싶어하니 다른 학교와 차별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학생을 끌어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 교장은 당장 골프·스노보드·스키·수영·태권도·글짓기·영어회화·중국어 회화·사물놀이 등 25개나 되는 방과 후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학생들에게 이 중 5~7개의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듣도록 했다. '벽지학교에서 어떻게 강사진을 확보할까' 싶었지만, 서 교장은 약점을 강점으로 바라봤다. 면온초 근처엔 골프장과 스키장, 리조트가 있었고, 이효석 기념관에는 작품을 쓰러 오는 시인과 소설가들도 많았다. 멀지 않은 횡성 민족사관고등학교에는 외국어에 능통하고 국악기를 잘 다루는 학생들이 있었다. 군부대에는 태권도 유단자와 대학생인 장병들이 많았다. 서 교장은 이 '지역 자원'을 이용해 방과후 학교를 운영했고, 학생들은 사립초등학교 못지 않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서 교장은 면온초에서의 성공경험을 금병초에서도 활용했다. 그는 이번에도 지역 특색을 활용한 체험 교육으로 학교를 탈바꿈해 놨다. "아이들이 어릴 땐 무엇이든 궁금해 합니다. 맨날 엄마한테 '이건 왜 이럴까?' '저건 뭐야?'하고 묻잖아요. 근데 초등학교에만 들어오면 호기심이 싹 사라져요. 왜 그럴까요?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손발로 직접 해보면서 자기가 끌리는 걸 찾아야 해요. '마음이 떨리는 대상'을 찾아가는 것이죠. 마음이 떨려야 호기심이 더 생기고 꿈도 생기지 않겠어요? 그런데 학교가 혼자 그런 기회를 다 해줄 수가 없으니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하는 거지요. (서대식 교장)"금병초는 지역 자산이 무궁무진하다. 금병초가 있는 신동면은 소설 '동백꽃'으로 유명한 작가 김유정의 고향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고개를 빠꼼히 내밀면 김유정 문학촌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서 교장은 김유정 문학촌에 유명한 문인들이 오면 "우리 아이들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고, 문학제가 열리면 아이들이 가서 '풍물 공연'을 했다. '김유정 닮기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아이들에게 김유정을 닮으라고 하는 것은 꼭 김유정처럼 문학을 하라는, 그런 협소한 의미가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쓴 김유정의 '감수성'을 닮아가자는 뜻이죠. 이렇게 지역의 인물과 관련된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자기 학교와 지역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는 계기도 됩니다."
모내기 하며 크는 아이들
금병초의 특징 중 하나가 '생태교육'이다. 마침 기자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점심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한 무리 달려가길래 따라가 보았다.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 바로 아래쪽에 펼쳐진 논·밭으로 내려갔다. 6학년 아이 10여 명이 담임교사와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취나물을 뜯으며 소란을 피웠다. 한 아이는 취나물에 코를 대고 벌름거렸고, 다른 아이는 한 손 가득 나물을 들고 "나 엄청 많이 땄다."고 자랑했다. 아이들은 바구니에 나물을 한 가득 담아서 곧바로 학교 급식실로 달려갔다. 이날 급식 메뉴는 잡곡밥, 시금칫국, 취나물 쌈, 깍두기, 그리고 돼지고기 볶음. 금방 밭에서 딴 취나물을 학교 급식실에서 교장, 교사, 아이들이 모두 나눠 먹는 풍경이 신기했다. 6학년 김남선(13)군은 "어제 딴 시금치로 만든 국이랑, 취나물이 정말 맛있다"고 했다. 금병초 아이들은 학교 옆 논밭에서 취나물뿐 아니라 쌀·보리·아욱·근대 등 다양한 작물들을 직접 길러 먹는다.

논·밭은 동네에 사는 동문이 무료로 장기 임대해줬다. 서대식 교장의 학교를 살리려는 노력에 마을 사람들과 동문들 모두 감동을 한 것이다. 넓은 논·밭을 아이들이 다 돌볼 수 없기 때문에, 평소엔 이장을 비롯해 동문들과 마을 어른들이 농사를 도와준다. 마을 어른 중 한 아주머니가 "우리 아이들이 농사를 참 잘 짓는다."고 자랑을 했다. "첫해엔 아이들에게 논에 들어와 모내기를 하라고 했더니 '어떻게 진흙탕에 들어 가느냐' '벌레에 물릴지 모른다'고 기겁을 하면서 안 들어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한 번 해보고 나니까 확 달라졌어. 이제는 시키지도 않아도 바지를 탁 걷어 부치고 논에 들어와서 벼를 심는다니까. 뭐든 해봐야 알아." 금병초 뒤쪽에 있는 '금병산'도 아이들의 교육현장이다. 금병산은 산기슭이 비단 병풍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금병산에 올라 숲 체험을 한다. 선생님과 함께 걸으면서 야생화도 보고, 쓰레기도 줍는다. 서 교장은 "초등학교 땐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는, 곤충 하나 더 아는 게 훨씬 더 창의적인 아이로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금병초는 또 삼포유원지, 춘천교대, 강원애니메이션고, 강원도예총 등 다양한 지역 기관과 협의해 방과 후 수업(18개)이나 동아리 활동(3개)을 지원받는다.
학원이 싫어서 온 아이들
금병초에는 다른 학부모처럼 학원을 서너 군데씩 보내다가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온 학부모들이 많다. 2년 전 춘천 시내 학교를 다니던 막내(현재 초3)를 금병초로 전학시킨 학부모 이광순(43)씨도 그런 경우다. "애가 하고 싶은 게 많고 저도 시키고 싶은 건 많은데 학교에서는 공부만 가르치고 다른 걸 못해 주더라고요. 그러니까 학교 끝나면 학원을 여러개 보냈죠. 금병초 얘기를 듣고 한번 보내 보자 결심했어요. 여기 와서 텃밭도 가꾸고 다양한 체험을 하니까 학원 갈 필요가 없어요. 아이도 학교 가는 걸 너무 좋아하고요."

학부모들은 "모든 학생들이 다 이 학교에 맞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학생들을 가만히 책상에 앉혀놓기보다 활동을 많이 시키는 교육을 하다 보니 주위가 다소 산만해진 학생들도 있다. 이럴 때 학부모가 전학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꾸준히 금병초에 학생이 몰리는 것은 서 교장의 교육철학 속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금병초 졸업생 학부모는 "금병초는 다른 학교보다 공부를 덜 시키지만 중학교에 갔는데 공부를 잘 하고 있다."며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공부를 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초등학교 때만은 공부보다는 산천을 뛰어 놀면서 자연과 가깝게 지내게 하고 싶었다."며 "금병초에서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가 교과점수는 다른 학교 아이들보다 낮을지 몰라도 자기만의 생각을 갖게 되고 남을 배려하는 힘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 TOP 싸이월드 공감
서울특별시 서초구 바우뫼로 1길 35(우면동) 한국교육개발원 keditor@kedi.re.kr Tel.02-3460-0319 Fax.02-3460-0151
ⓒ KOREAN EDUCATIONAL DEVELOPMENT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