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2017년 7~8월호
특별기획 ①
교육과정의 혁신보다 기초부터 확립하자
박인우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교육과정의 혁신보다 기초부터 확립하자
I. 서론
사회의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대학교육도 끊임없이 변해왔고, 또 변화가 필요하다. 대학이 시대의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뒤쳐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대개 외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사회가 전반적으로 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대학이 변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4차’에서 의미하듯이 사회와 마찬가지로 교육기관도 이미 이러한 상황을 적어도 세 번 이상은 겪었다. 산업혁명과 함께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현재와 같은 학교가 시작되었고, 표준화된 공정별로 부합하는 인력을 양성하여 배출하였다. 대학도 사회와는 별개로 운영될 수 없고, 사회가 변함에 따라 대학 교육도 변해왔다. 서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고등교육은 오랫동안 인문학 위주로 이루어졌다. 수차례의 산업혁명을 통해 고등교육도 끊임없이 변해왔으며, 특히 최근에는 인문학보다는 실용학문, 융합학문이 부각되고 있는데, 대학이 변화에 부응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혁명에 의해 이전과는 상이한 산업이 사회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이를 담당할 역량을 갖춘 인재를 요구한다. 이전의 산업혁명은 고등교육에 비해 초중등교육에서의 변화를 요구했다. 이에 비해 4차 산업혁명에 맞서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이 시대에는 고등교육이 산업구조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산업의 변화에 따라 그에 맞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요약되는 미래 사회에 우리 고등교육이 변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고등교육의 다양한 측면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교육과정을 혁신하기 위한 정책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대학에서 교육은 연구와 함께 핵심 기능이다. 이 교육에서 핵심은 학생이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경험하도록 조직된 교육과정이다. 이 글은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미래 사회를 선도하기 위해 우리나라 대학이 교육과정을 제대로 갖추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에 맞춰졌다.
Ⅱ. 4차 산업혁명과 대학교육의 변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대학교육 혁신 방안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우선 전통적인 대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였다. 강의실에서 교수와 학생이 대면으로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던 교육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대표 사례로 미네르바 스쿨이 거론된다. 학위에 필요한 모든 교육이 실시간 온라인 화상 강의로 이루어진다. 특정 장소에 모여서 수업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물리적인 캠퍼스가 없다. 학생들은 7개국에 설치되어 있는 기숙사에 매 학기 돌아가면서 거주한다. 토론식 수업, 플립러닝, 현장 중심의 과제, 국제적인 기숙환경 등이 장점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 학교만의 독특성은 물리적 캠퍼스가 없이 온라인 실시간 화상 강의를 하면서도 기숙사를 운영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MOOC는 대부분 온라인 교육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실시간 상호작용이 거의 없고, 학습자간의 대면이 없는 전형적인 온라인 교육이다. MOOC도 기존 대학교육이 캠퍼스 단위로 제공되던 교육을 누구든지 접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는 점에서 미래 사회에서 대학교육의 새로운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대학의 교육과정과 관련하여서는 두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 교육의 내용이다.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역량을 갖춘 인재가 요구된다고 한다. 이러한 역량은 대개 창의성, 문제해결력, 의사소통, 협력 그리고 융합이다. 다수가 예측하듯이 인공지능이 발달하여 현재의 직업 중 60%가 사라진다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산업에서 요구되는 역량이 지금과는 달라질 것임은 쉽게 짐작이 된 다 . 이러한 역량은 기존의 교육과정으로 육성하기 어렵고, 새로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학과 단위의 교육과정을 타파하여 “탄력성을 갖춘 학사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학과는 특히 중요하다. 교수와 학생은 학과에 소속되고, 그 정원도 학과 단위로 주어진다. 입학, 교과과정 운영, 졸업까지 모두 학과 단위로 이루어진다. 입학하기도 전부터 학과 단위로 예비소집과 안내가 이루어지고, 졸업 후에도 동문회가 지속된다. 학과에 교원, 학생, 교육과정이 결합되어 있어서 사회의 변화에 따라 학과의 신설과 폐지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4차 산업혁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폐쇄적인 학과 중심의 학사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2016년에 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하여 입학한 학과가 아닌 전공으로도 졸업이 가능하도록 전공선택제를 규정하였다. 우리나라 대학이 학과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KAIST에서 2018년부터 도입할 무전공 트랙도 이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이상에서 소개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대학에 요구되는 변화는 우리나라 대학에서 그저 지나가는 바람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전에도 사회가 크게 변하거나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이와 같은 예측은 많았다. 20년 전에 사이버공간이 교육에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캠퍼스 기반의 대학은 30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대학은 사라지기보다 온라인 교육을 받아들여 기존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네르바 스쿨과 MOOC는 직접 대면이 아닌 온라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다. 이 환경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기존의 캠퍼스 중심 대학을 능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롭게 요구되는 역량도 이미 오래 전부터 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들이다. 다만, 우리나라 대학에서 학과는 폐지하기가 어렵겠지만, 교육과정은 학과에서 벗어나는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현실을 고려해보면, 4차 산업혁명 대응 방안을 논하기 이전에 교육과정을 제대로 구성하는 방안부터 살피는 것이 더 절실하다.
4차 산업혁명과 대학교육의 변화
Ⅲ. 교육과정의 기초 확립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에 앞서 대학은 교육과정의 기초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대학 교육과정은 교과과정과 비교과과정으로 구성된다. 교과과정은 학점이 부여되는 교과목으로 구성되고, 비교과과정은 학점은 부여되지 않지만 졸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졸업요건이다. 교과과정은 교양과 전공으로 구분된다. 학생의 선택이 가능한가에 따라 필수와 선택으로 구분된다.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 하는 교양 및 전공학점, 총 이수학점이 정해져 있고, 각 학기당 이수할 수 있는 학점도 규정되어 있다. 개별 교과목마다 일정한 학점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 교육과정의 주요 내용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 대학은 거의 없다. 우선 대학은 교과과정과 비교과과정, 특히 비교과과정으로 구분하지 못한다. 교과 과정을 제외한 모든 교육적 경험을 비교과과정으로 여기는 듯하다. 교양과 전공의 구분도 모호하여 전공과목을 교양에 포함시키거나, 대학에서 가르칠 필요가 없는 교과목이 포함되기도 한다. 교양과 전공 이수 학점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도 거의 없다. 물론 다수의 대학이 130학점으로 요구하고 있는 졸업요구학점도 적정한지를 판단하지 못한다. 특정 교과목에 왜 그 학점이 부여되는지에 대한 근거도 당연히 없다. 동일 과목에 대한 학점이 대학 또는 학과에 따라 상이한 경우도 많다. 사실 고등 교육법에 1학점이 15시간의 수업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의 의미를 아는 교수도 학생도 거의 없다. 적정 수의 교과목을 개설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방법을 갖고 있는 대학도 드물다. 이러한 현실은 대학이 그 중요한 교육과정을 얼마나 팽개쳐 왔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나라 대학이 4차 산업혁명뿐만 아니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교육목표(역량)에 따라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교육목표는 대학이 교육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바이다. 이 목표는 다양한 형태로 표현이 가능한데, 최근에는 주로 역량으로 기술된다. 모든 대학이 교육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교육목표에 따라 교육과정, 교양과 전공 교과과정, 그리고 비교과과정을 구성하는 대학은 거의 없다. 나아가 이러한 목표의 달성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을 미리 기술하는 대학도 없다. 교육목표에 따라 교육과정을 운영하라는 것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교양과 전공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그 달성여부를 확인하라는 것이다. 교육목표는 단순히 ‘구호’가 아니라 교육과정을 통해 달성되어야 하는 목표이다.

둘째, 전공의 전문성에 따라 교육과정을 구성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교육과정은 학과별로 편성 및 운영된다. 전통적으로 대학에서 학과는 학문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다. 학문의 성쇠에 따라 학과도 신설되거나 폐지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나라 대학에 신설되는 학과 중에서 대응되는 학문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학문보다는 직업의 변화를 고려하여 학과가 신설되거나 개명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학문은 대개 전공으로 표현된다. 학과가 학문에서 멀어지게 되면 전공과도 불일치하게 된다. 교육과정의 기초가 되는 전공의 전문성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이 효과적인 교육을 하려면 우선 교육과정의 기초인 전공의 전문성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전공의 전문성은 전공에서 요구되는 역량으로 표현된다. 즉 특정 전공 이수자가 갖춰야 할 역량을 먼저 확인하고, 이를 육성하기 위한 교과목과 비교과과정을 편성해야 한다. 아무리 융합이 중요한 시대라고 해도 전공 중심의 교육과정은 대학 교육의 핵심으로 굳건히 갖춰져 있어야 한다. 전공이 있어야 융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전공은 학과와는 별개로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학점의 기준을 정립한다. 1학점은 수업 15시간, 예습 15시간, 복습 15시간의 학습량을 의미한다. 15주 동안 매주 3시간씩 수업이 진행되는 교과목에 대해 3학점이 부여된다면, 학생에게 요구되는 학습량은 매주 9시간이다. 이를 기초로 계산해 보면, 매주 15학점을 이수하는 학생은 45시간을 학습해야 한다. 학기당 15학점을 이수한다면, 8학기에 120학점을 이수하게 된다. 주당 근로기준시간이 40시간임을 고려한다면, 주당 15학점 이수도 많은 셈이다. 한편으로 특정 교과목에 3학점을 부여하려면 총 135시간을 요구하는 근거가 명시되어야 한다. 즉 그 교과목을 통해 육성하고자 하는 역량과 그 역량이 육성되기 위해 요구되는 학습 경험, 그러한 학습 경험에 필요로 하는 시간을 계산하여 학점이 부여되어야 한다.
Ⅳ. 결론
우리나라 대학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려면 교육과정을 혁신하기 이전에 기초부터 제대로 개발하고 운영해야 한다. 교양과 전공의 구분, 졸업요구학점, 학기당 이수학점, 교양과 전공 최소 이수 학점, 교과목 당 학점 등에 대한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육과정의 근거가 되는 교육목표 또는 역량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 달성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과정을 운영한 다음에 학생의 만족도와 더불어 목표 달성에 기여한 정도를 확인하여 개선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개발, 편성, 운영, 평가, 개선하는 체제가 확립된다면, 4차 이후에 또 다른 산업혁명이 와도 우리나라 대학은 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