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기억하는 인간 vs 상상하는 인간
김재춘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기억’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망각이다.
우리는 뭔가를 기억하기도 하고 망각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기억의 반대말이 망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기억’의 반대말이 정말 망각일까?
상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 그렇다.

그런데 기억의 반대말이 어떻게 상상이라는 말인가?
망각과 상상 중 기억의 반대말로 어느 것이 더 적절한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망각이라고 하므로 어법적으로는 망각이 기억의 반대말이다.
다수결에 따르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의 반대말로 망각을 지지할 것이다.
뭔가를 기억하는 걸 중시하는 사람은 특히 망각을 기억의 반대말이라고 말할 것이다.

기억이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뭔가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나쁜 것이었다.
학교에서도 한 때는 기억이 무엇보다 더 중요했다.
얼마나 많은 지식을 기억하는지 수시로 평가했고,
장학퀴즈왕처럼 많은 지식을 기억하는 사람을 천재 또는 지식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기억이 중요했던 시절은 지나갔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미국 제퍼디쇼에서 퀴즈왕으로,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는 세계챔피언과 대결에서 바둑왕으로 등극했다.
인공지능 의사, 변호사, 회계사, 조교 등이 출현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실제세계와 가상세계가 연결되고 융합되면서
실제와 가상의 구분이 불가능하고 무의미해지는 미증유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

필자는 기억의 반대말로 망각보다는 상상을 선호한다.
기억은, 과거에 경험한 것을 기억한다는 점에서 과거지향적인 말이다.
상상은, 미래에 가능한 일을 상상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인 말이다.
과거를 상상하는 것이 어색하듯이, 미래를 기억하는 것도 어색하다.

필자는 기억의 반대말로 망각보다는 상상을 선호한다.
기억은, 과거를 똑같이 기억한다는 점에서 동일성과 무료함을 친구로 삼는다.
상상은, 생각의 자유로운 흐름이라는 점에서 새로움과 흥미진진함을 친구로 삼는다.

필자는 기억의 반대말로 망각보다는 상상을 선호한다.
기억은 상자 속에 갇힌 사유에 기반하고 있다면,
상상은 상자 밖의 사유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반복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을 지루하고 헐벗은 삶으로 이끈다면,
상상은 차이생성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을 흥미진진하고 풍성한 삶으로 이끈다.

교육을 통해 어떤 인간을 기를 것인가?
기억하는 인간을 기를 것인가? 상상하는 인간을 기를 것인가?
과거지향적인 인간을 기를 것인가? 미래지향적인 인간을 기를 것인가?
반복하면서 무료하게 살아가는 인간을 기를 것인가? 매순간 새로움을 상상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살아가는 인간을 기를 것인가?

미래 인간의 삶에서 기억의 자리는 축소되지만, 상상의 자리는 끝없이 확장될 것이다.
과거의 기억에 구속되어 살게 할 것인가, 미래를 상상하면서 자유롭게 살게 할 것인가?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을 기르는 교육활동의 종사자로서
필자는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 아니라 상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시몬 페레스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필자는 작년 가을 이스라엘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던 중 텔아비브 공항에서 들었다.
기억의 반대말이 상상이라고 말했던 시몬 페레스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