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시대, 기계의 객관성과 경쟁하기보다 인간의,
너무나 인간적인 주관성에서 의미 찾아야
김재춘 /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싸이월드 공감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언론 예측이 철저하게 빗나간 사건이었다. 그런데 당선을 정확히 예측한 존재가 있었다. 인도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제닉AI’가 개발한 인공지능 모그 IA였다. 모그 IA는 SNS의 빅데이터 분석에 근거하여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했다.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알파고의 충격 이후 또 한 번의 충격이다. 최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은 언론의 예측이 빗나간 반면,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의 예측은 적중했다.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인간이 또 진 것이다.

인공지능의 예측이 적중했던 것은 인공지능의 분석이 더 객관적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인간은 자신의 경험, 선호, 관심이나 필요, 사회문화적 맥락 등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인간적인 특성과는 무관한 기계의 객관적인 눈으로 세계를 보고 데이터를 분석한다. 기계 앞에서 인간의 객관성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러시아의 영화감독 베르토프(Vertov)는 ‘영화적 눈’(kino-ey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영화적 눈은 카메라의 시각 또는 관점을 의미한다. 인간의 ‘주관적 지각’과 대조되는, 카메라가 만들어 내는 이른바 객관적인 ‘영화적 지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영화적 눈이다.

기차 여행을 한다고 상상해 보자. 빠르게 달리는 기차의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수많은 풍경을 우리는 지각한다. 기차 밖으로는 동일한 풍경이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사람마다 자신이 관심있는 풍경만을 지각한다. 사실 기차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차창 밖의 풍경을 객관적으로 지각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눈에 해당하는 카메라의 지각은 어떨까?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 여행을 하면서 카메라로 차창 밖의 풍경을 촬영한다고 가정해 보자. 카메라마다 다른 풍경이 찍혀질 수 있는가? 카메라의 성능에 따라 선명성에 차이가 있다거나 카메라 촬영 각도에 따라 풍경의 프레임이 달라질 수는 있어도 카메라의 지각은 동일할 것이다.

기차 여행의 예시는 인간의 지각은 주관적이고 선택적인데 반해 카메라의 지각은 객관적임을 보여준다. 주변 장면의 세세한 것들을 객관적으로 기억하는 일에서 인간이 카메라와 경쟁하는 것은 부질없다. 그리고 인간은 주변의 자연이나 사회 현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일에서 인공지능과 경쟁하기가 어렵다. 객관적인 지각과 인식은 카메라나 인공지능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카메라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간의 지각과 인식은 어떠한 의미나 가치도 지니지 못하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19세기 카메라가 발명되자 위기에 처한 예술은 예술활동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예술은 대상을 단순히 재현하는 활동을 넘어서 인상 또는 추상 표현 활동으로 새롭게 규정되었다.

필자는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주관성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계와 달리 자신의 몸에 구속되어 지각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인간은 자신의 몸에 구속된 그같은 지각에서 의미를 찾거나 부여하는 존재이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은 기계의 객관성과 경쟁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주관성에서 의미를 찾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기계의 눈이나 분석이 객관성의 상징이 된다고 해서 인간의 존재 가치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주관성이나 유한성에 기반한 인간적인 지각이나 인식을 객관성만을 중시하는 기계가 결코 흉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시공간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객관적인’ 지각이나 인식 능력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인간은 객관성조차도 뛰어넘을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존재라는 점이다. 교육학자 니버그와 에간(Nyberg & Egan)에 따르면, 인간은 신화적 단계, 낭만적 단계, 철학적 단계를 거쳐, 역설적 단계로 발전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의 교육적 발달은 객관성을 중시하는 철학적 단계에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단계를 넘어 역설적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역설적 단계는 인공지능과 같은 기계가 범접하기 어려운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영역에 해당한다.

『교육개발』이 인공지능의 객관성에 주눅 들지 않고, 인간의, 너무나 인간적인 주관적 특성을 존중하고 인간적 지각과 인식에 가치를 부여하는 교육학자, 교육정책개발자, 학교경영자, 현장교사 등을 포함한 모든 교육관계자들에게 큰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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