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지역 뛰어넘는 ‘미래의 고전’ 만든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박상훈 / 아주경제 기자 싸이월드 공감
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 김봉렬, 이하 한예종)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교육방법, 세계 정상급의 교수진, 우수한 교육시설등을 바탕으로 전문예술인을 양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힘입어 지난 1993년 문을 열었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학제와 달리 외국은 대학과정에 해당하는 다양한 형태의 학교들이 존재한다. 특히 점점 전문화되는 사회에 발맞춰 예술교육기관도 분야별 전문교육기관으로 세분화돼 설립·운영되고 있다.

한예종은 음악원, 연극원, 영상원, 무용원, 미술원, 전통예술원 등의 기관을 두고 있는데, 각 원들은 외국의 학교들처럼 독립된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들 6개 원은 저마다 다른 전문성을 지닌 곳들이지만 ‘예술’이라는 공동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활발한 교류를 해 오고 있다.

‘중창’ 정신 토대로 예술 스펙트럼 넓혀
김봉렬(58) 총장은 지난 2013년 9월 한예종 제7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그는 ‘중창’(重創)의 정신을 강조하며 한예종의 일대 변혁을 예고했다. 그는 “중창이라는 것은 기존의 예술성과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더 나은 미래를 쌓아가자는 것”이라며 “예전엔 유학을 가지 않고도 세계적 예술가를 만드는 ‘높이 경쟁’에 초점을 뒀다면, 이제는 ‘깊이’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예술은 자기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중요한데, 특히 정치·사회·경제 등 다른 분야와도 교류를 넓히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봉사의 기회를 갖는 등 예술의 확장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한예종이 ‘입체적인 학교’로 발돋움하길 바라고 있다.

그의 예술철학이 학교에 뿌리내린 결과일까, 지난해 한예종은 음악, 무용 등 국제콩쿠르에서 재학생 200여 명이 입상하는 등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교육공간도 대폭 늘었다. 작년 개관한 대학로캠퍼스는 예술영재교육원, 교수학습지원센터 등 사회교육을 활발히 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대학 본연의 임무인 학생교육은 물론 교수법, 교수환경 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또한 한예종의 6개 원이 각자의 경계를 벗어나 융합예술 창작을 할 수 있도록 지난해 11월엔 융합예술센터도 설립됐다. 여기서는 학생들과 외부 아티스트 등이 함께 예술-과학기술-인문학의 융합을 시도한다. 김 총장은 이런 변화를 “한예종의 예술 스펙트럼이 X(엑스)축에서 Y축, Z축 등으로 확장해 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향(向)중국 프로젝트’ 가동… 국내외 교류 통해 예술시장 확보
최근 영국 글로벌대학 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발표한 ‘세계 대학 학과별 랭킹’ 공연예술 부문에서 한예종은 국내 대학 중 유일하게 46위를 차지했다. 이 랭킹에 한국 대학이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순위가 좋은 대학임을 나타내는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겠지만, 상대적으로 '더 나은 학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시아권 대학 가운데에서도 유일하게 순위에 진입했지만 한예종으로서는 다소 아쉬운 결과일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김 총장은 “우리 학생들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국제적 예술단체에 취업도 많이 한 것이 순위 상승에 많은 기여를 한 만큼 더 높은 순위를 내심 기대했다”고 속내를 비쳤다. 사실 대학 순위는 평판도 또는 인지도가 상당히 중요한 평가 요소 중 하나다. 그런 면에서 그의 애정 어린 불만이 이해가 됐다.

예술가들에게는 창작활동을 펼칠 무대가 필요한데 국내 예술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김 총장은 세계무대로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향(向)중국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중국 31개성 주요 예술대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중국관련 사업 발굴, 중국 내 한예종 홍보, 한국 예술가들의 일자리 창출 등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한예종은 지난 10년간 운영해온 아시아예술인재양성사업(AMA) 전문사(석사과정) 상호교류로 중국 유학·진출 기회를 제공하고, 대학 간 공동학위제도를 운영해 청년 예술인들의 중국활동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김 총장은 지난 4월 24일부터 28일까지 중국 북경지역 6개 예술대를 방문해 중앙미술학원, 중앙희극학원, 중국희곡학원등 3개교와 교류협정을 체결했다. 또한 기존에 교류협정을 맺은 중국전매대학, 중국음악학원, 북경무도학원 등 3개교와는 협정을 갱신했다.

한예종과 새로 교류협정을 맺은 중앙미술학원은 중국 교육부에 직속된 유일한 고등미술학원으로 지난 1918년 설립됐다. 중국지폐 제2호(1950년)와 제3호(1960년)를 디자인한 학교로도 유명하다.
1950년 문을 연 중앙희극학원은 중국 최고의 희극예술교육대로 장쯔이, 탕웨이, 공리 등 중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을 배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희극학원과 같은 해 설립된 중국희곡학원은 중국 전통희곡의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경극공연, 경극악기 교육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김 총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5월 22일부터 26일까지는 중국 상해·항주 지역에 위치한 상해음악학원, 상해희극학원, 중국미술학원 등 3곳과 상호 교류 방안을 협의했고, 올해 하반기에는 중국 남부·중서부 지역의 신흥 예술대학들과 교류를 추진할 계획이다.

그는 “중국은 경제뿐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우리에게 큰 시장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한·중 양측에서 교류에 적극적인 학생들을 교환하고, 더 나아가 양국의 예술전문가를 육성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혜택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실력 있는 교수들 붙잡는 게 주요 임무
한예종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한국콘텐츠진흥원, 강원도 철원군 등 다양한 파트너들과 여러 주제로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보통 대학은 대학끼리 협약을 맺는 편인데, 이 학교는 이런 점에서 이례적인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한예종은 현재 해외 100여 개 대학과 교류를 진행 중이다. 눈여겨 볼 대목은 여느 대학들과 달리 지자체, 기업 등이 먼저 한예종에 업무협약을 하자고 연락을 해온다는 점이다. 교류 요청이 쇄도하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 김 총장은 “학생들의 수준”이라고 단언했다. 한예종은 실력은 물론이고 예술에 대한 진정성이 유다른 이들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오는 곳이기에 활동적이고, 자발적인 학생들이 많다는 말이다.

예술은 끊임없이 사회와 호흡해야 만들어진다. 혼자 공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 독자와 만나야 한다. 지자체나 기업들에 예술활동을 나가는 학생들은 단순히 공연을 해주는 게 아니라, 문화환경을 조성하고 관광 촉진, 주민들의 삶의 질 제고 등에 기여함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이 한 단계 성장하게 된다.

김 총장은 “한예종은 국가가 특별히 만든 학교라 상대적인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과정을 통해 이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3월 전남의 한 섬마을에서 개최한 티셔츠 그림 그리기 행사도 그 지역의 어린이들을 훌륭한 예술가로 키우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무한한 예술적 경험의 기회를 주고자 기획됐다. “사업을 하든, 직장을 다니든 어린 시절의 예술경험은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자산”이라고 강조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 예술의 핵심’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한예종은 최근 배우 오만석 씨, 소프라노 홍혜란 씨, 건축가 최욱씨를 비롯해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인사들을 겸임교수로 대거 채용했다. 이 배경에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만나야 한다’는 한예종 나름대로의 교육철학이 깔려 있다. 김 총장은 “솔직히 신규 임용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자신만의 예술활동을 위해 교수직을 사임하려는 분들을 말리는 일”이라며 “안숙선, 이창동, 홍상수 전 교수때도 그랬지만 총장으로서의 가장 큰 임무가 바로 이런 실력 있는 분들을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며 웃었다 .

캠퍼스 이전 문제 ‘뜨거운 감자’… 지자체들 유치 경쟁 치열
한예종의 현안 중 하나는 지난 2009년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불거졌던 학교 이전 문제다.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가 조선 20대 왕인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 묘인 의릉 능역 안에 위치해 왕릉복원차원에서 이전 필요성이 제기되어 온 것이다.

한예종 캠퍼스는 현재 서울 석관동과 대학로, 서초동 등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 캠퍼스 이전은 지금부터 최소한 8년이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겠지만, 이전이 확정되면 이들 캠퍼스를 하나로 통합하게 된다.

사실 ‘이전’이라는 표현보다는 ‘없던 캠퍼스를 새로 만든다’고하는 게 더 적확한 말일 수 있다. 김 총장은 “땅과 건물이 우리 소유가 아니다. 법적으로 말한다면 ‘초법’적인 건물에 학교가 들어선 셈”이라며 “개교 이래 숙원이 있다면 바로 이 문제일 것”이라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현재는 정부당국의 이해를 구해 타당성 용역을 시작한 상황이다. 과천, 고양, 세종, 대전, 화성, 구리, 청주 등 적지 않은 지자체들이 한예종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학생과 교직원을 합해 3,500여 명이라 큰 규모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예종이라는 위상과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지자체로서는 적극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다만, 김 총장은 한 가지를 염려했다. “교육적인 배려가 앞서야 하는데 정치적인 판단이 개입되면 교육은 죽습니다.”

“등불은 남 비추라고 있는 것… 예술가는 창작으로서 문화융성에 기여해야”
한예종 학생들이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4월 24일부터 5월 1일까지 미국 뉴욕 심포니 스페이스 극장에서 열린 ‘2016 발렌티나 코졸로바 국제 발레콩쿠르’에서 이 학교 무용원과 한국예술영재교육원 학생들 총 13명이 상위권에 입상하는 성적을 거뒀다.

이렇듯 능력을 인정받는 한예종 학생들의 미래(일자리)는 어떨까.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등은 ‘예술인 복지 증진과 일자리 창출’에 전력을 다한다. 그렇지만 예술인 대다수의 미래는 여전히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예종 재학생·졸업생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김 총장은 “입학식 때 주로 하는 말이 ‘들어오기도 힘들지만 나가는 것은 더 힘들다. 예술은 어차피 배고플 각오를 해야 한다’고 정신무장을 시키는 편”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예술시장은 지원책으로 절대 해결되지 않고, 육성이 우선돼야 하는데 국·영·수 위주의 교육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등불’을 예로 들며 “그래도 한예종 학생들은 선택된 자들이다. 남을 비추라고 존재하는 등불처럼 어려운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창의적인 창작활동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융성’이 화두인 시대, 대학과 예술 그리고 한예종은 어떻게 여기에 기여할 수 있을까. 김 총장은 “예술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은 창작”이라고 잘라 말했다. 예술의 본질을 강조하는 그는 “예술가는 죽지만 고전은 영원히 남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창작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며 한예종의 목표를 한문장으로 제시했다. “인류에게 감동을 주는 ‘고전 창작소’, 그게 바로 한예종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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