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끝나면 쌓이는 질문지, 사교육 없이 명문고 된 비결
-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전민희 / 중앙일보 기자 싸이월드 공감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이하 공주사대부고)는 국내 유일의 국립 자율학교다. 자율학교는 일반고에 비해 좀 더 자유롭게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학생선발권도 그 중 하나다. 신입생의 50%에 해당하는 99명을 전국에서 선발하지만 서울·경기 등 수도권 학생은 절반에 못 미친다. 2015학년도 신입생 기준으로 서울 출신이 12명, 경기 출신이 34명이었다. 일반적인 특목고처럼 뛰어난 학생들이 입학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수능과 대학 진학 결과는 우수하다. 2015학년도 수능 국어·수학·영어 표준점수의 합은 372.7점으로 전국 15위였다. 명덕외고(16위), 청심국제고(22위), 서울과학고(38위) 등 특목고보다 높다. 서울 상위권 대학 진학률도 높다. 서울대 10명, 연세대 19명, 고려대 19명, 서강대 12명, 성균관대 43명, 한양대 36명이 합격했다.
공격·수비로 나눠 묻고 답하며 수업
공주사대부고가 수능에서 우수한 성과를 낸 비결 중 하나가 ‘학생 참여형 수업’이다. 대표적인 게 조남순 교무기획부장이 진행하는 ‘오펜스·디펜스 화학수업’이다. 사전에 학생들에게 공부할 범위를 알려준 후, 매 수업마다 무작위로 학생 2~3명을 지명해 발표를 시키는 수업이다. 다른 학생들은 발표자의 설명을 들은 후 이해가 안 가거나 궁금한 내용을 묻는다. 이때 발표자가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수행평가에서 1점 감점을, 질문자가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걸 물어보면 1점 가점을 받는다. 발표자는 적어도 5개 이상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학생들끼리 질의응답을 통해 ‘공격(오펜스)’과 ‘방어(디펜스)’를 펼치는 셈이다. 10여 년 전부터 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조 부장은 “쌍방향 수업을 하면 학생들의 수업집중도가 높아진다”며 “친구들에게 자극 받아 교과서와 자습서뿐 아니라 인터넷 등을 뒤져 꼼꼼하게 수업준비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한남대 1학년에 재학 중인 신민경 씨는 예전 1학년 때 들었던 국어수업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선 말기의 학자인 추사 김정희의 그림 ‘세한도’와 관련한 작품에 대해 배울 때였다. 시의 종류, 주제, 시대적 배경 등에 대해 일방적으로 배우고 끝났던 중학교 때와 달리 반 친구들 전체와 다양한 얘기를 나눴던 경험이 새로웠다. 한 학생이 ‘그림체가 화려하지 않은 작품인데 왜 유명한지 모르겠다’고 물으면 누군가 ‘당시 그가 처한 시대적 상황에 대해 엿볼 수 있다’는 답변을 했다. 신씨는 “똑같은 그림을 보고도 다양한 생각을 펼쳐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튀어 보인다? 질문이 일상이 된 학교
비결은 또 있다. 바로 ‘질문’이다. 교사와의 질의응답은 수업시간 이후에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오후 6시 40분부터 11시 10분까지 교실에서 자율학습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 주변에 학원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질문은 학생들이 자신이 모르는 게 뭔지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기회가 된다. 중학교 때까지 질문하는 걸 꺼리던 사람도 이곳에서는 ‘질문왕’이 된다. 현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인 고준호씨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하다 이해 안 가는 내용이 있어도 학교 선생님이나 학원 강사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질문하는 건 왠지 튀는 행동인 것 같아 꺼려졌고, 선생님한테 ‘이런 것도 모르느냐’고 핀잔을 들을까 우려도 됐다. ‘나중에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긴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질문하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그는 “특히 2학년 때 수학 ‘미적분과 통계기본’을 공부하면서 이해가 안 갔던 부분에 대해 담당 교사가 A4 용지 빽빽하게 증명을 써준 이후로 교사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졌다”며 “수학을 더 열심히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교사 한 명에게 질문하려는 학생들이 여러 명 몰릴 때가 잦았다. A라는 학생의 질문에 답해 주는 동안 B는 하릴없이 기다리거나 다시 교실에 갔다 와야 했다. 이 과정이 비효율적이라고 느낀 학교 측에서 고안한 방법이 ‘질문지’다. A4 용지 2분의 1 크기의 질문지는 학급별로 비치돼 있다. 학생들이 공부하다 모르는 내용을 적어 담당교사에게 제출하면, 교사는 학생의 질문에 대해 서면이나 대면으로 답을 해준다. 김동현 공주사대부고 교감은 “국어·영어·수학 같은 주요 과목 담당교사는 한 번에 3~4개의 질문지가 책상 위에 있을 정도로 활용도가 높다”며 “교사들은 좀 더 여유롭게 학생들의 질문에 답할 수 있고, 학생들은 낭비하는 시간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논문 작성 등 인근 대학과 연구활동
오래전부터 지역 명문고였던 공주사대부고는 원래 수시보다 정시에 강한 학교였다. 눈에 띄는 화려한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보다 학생들이 학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왔다. 대표적인 게 자율학습이다. 학생들은 저녁시간은 물론, 대부분 특목고에서 자유롭게 운영하는 주말에도 의무적으로 자율학습에 참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학습법을 개발하고, 성적을 향상시킨 학생도 많다. 하지만 학교는 대입제도의 변화에 발맞춰 체질을 바꿔 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영이 공주사대부고 교장은 “2014학년도 서울대 합격생은 대부분 정시모집이었지만, 2015학년도에는 전체 10명 중 절반이 수시모집으로 합격했다”며 “학교 프로그램이 경쟁력을 갖춰 나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2014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R&E(Research& Education·소논문)와 창의력경진대회 등이다. 소논문 작성은 대입 수시전형에서의 유불리를 떠나 학생 스스로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심화학습을 이어가는데 효과적이다. 특히 공주대·한국교원대·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도움으로 이뤄지는 R&E는 시행 첫해부터 27개 팀이 참여하면서 활발하게 진행했다. 특목고 등에 비하면 늦은 출발이지만 R&E는 학생들의 진로를 개발하고 심화학습을 돕는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성균관대 전기전자공학부 1학년인 김승호 군은 공주사대부고 재학시절 물리 R&E에 참여하면서 한 단계 발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주대 물리학과 교수와 ‘비정질금속의 자기 임피던스 효과’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이를 통해 배우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주제 자체가 막연했지만, 관련 논문을 찾아 읽으면서 연구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이공계 진학이라는 막연한 꿈을 전기전자공학 분야 연구원으로 구체화했다.

R&E는 자연과학·공학뿐 아니라 인문사회학 분야에서도 이뤄진다. 3학년 도희진 양은 지난해 1학기 때 한국개발연구원 박사와 함께 ‘중국 자본주의 탐구’에 대해 연구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바탕으로 사회계층 이동성을 통해 중국 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탐구했다. 그는 “학술적인 자료를 토대로 가설을 세우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학습능력이 향상된 것은 물론 비판적 사고력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숙사서 후배 도와주며 리더십 향상
학교는 다양한 인성교육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공주 사곡중과 결연해서 진행하는 ‘꿈 자람 학습 멘토링’이나 동아리 ‘한울’의 ‘한부모 가정교육 봉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동아리 ‘한울’에서 활동하는 2학년 강희주 양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상처받은 아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며 “장래 희망대로 교육 분야에 몸담았을 때 이때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드림스타트’ 프로그램을 통해 멘토로 활동하는 2학년 김소형 양은 “멘티들이 좀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존감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인성교육은 교내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기숙사 호실장 제도가 대표적이다. 2학년 1명이 호실의 장이 돼 1학년 5명과 한방을 쓰는 제도다. 2학년 선배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후배들을 돌보면서 학교생활에 대한 것은 물론 학습, 진로·진학 등에 대한 도움을 준다. 1학년 말에 2학년 때 호실장을 할 사람을 모집하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김동현 교감은 “보통 2배수 이상의 학생이 지원한다”고 말했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 학생들이 누가 봐도 힘든 일에 나서는 건 신입생 때 호실장 선배에게 받았던 호의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선배에서 후배로 배려와 나눔이 이어지는 셈이다. 김 씨(성균관대)는 1학년 때 호실장 선배 덕분에 사이가 안 좋았던 친구와 마음을 터놓게 됐고, 막역한 사이로 발전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호실장으로 1년 동안 후배들과 동고동락했다”며 “리더십을 기르는 것은 물론, 갈등을 조율하는 법을 터득하고 대화의 기술을 익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체력과 협동심을 기르는 활동도 있다. 1학년 남학생 기숙사를 중심으로 실시하는 축구경기 ‘울림리그’다. 기숙사 2개 호실이 한 팀이 돼 매주 번갈아 가며 축구경기를 펼친다.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에는 축구장에서 승부를 겨루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공부하기도 시간이 모자란 고등학생이 웬 축구경기를 하느냐고 의아할 사람이 많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체력을 기를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학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공부하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팽동명 씨는 “학교 자율학습 중간에 30분 쉬는 시간에도 운동장에서 줄넘기·조깅 등 자유롭게 운동하는 사람이 많다”며 “한 가지에 집중했던 경험은 결국 학습에서도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공주사대부고는 모든 활동의 중심에 학생이 있다. 수업도 학생 참여형으로 이뤄지고, 학생과 교사 간의 원활한 질의응답을 위해 질문지 시스템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배우며 함께 성장한다. 공주사대부고의 앞날이 밝을 것이라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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