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서울대학교 총장
대담 : 김재춘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싸이월드 공감
“법인화 모순해결 통한 ‘서울대형 발전모델’ 정립이 최우선 과제
…국립대학법인 재산에 납세의무 부과는 부당, 비과세 대상으로
명시하는 입법 추진 중”
“대학 구조개혁, 인원감축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은 문제 있어
…대학에 자율성 좀 더 주고, 자연스러운 선순환의 길 찾아야”
취임 2주년, 임기 반환점을 돈 성낙인(66) 서울대 총장은 거침이 없었다. 국내 첫 국립대학법인으로서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성 총장은 정부의 모순적 태도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는가 하면, 법학자로서 법적 모순조항을 조속히 풀고 싶은 의지가 담긴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고등교육법상 국립대학법인은 엄연히 국립학교인데, 정부는 ‘서울대는 법인이니까 국립대학이 아니지 않느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국립대학법인 재산에 대해 거액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감사원에 심사청구를 해 놓았습니다."

성 총장은 “정부는 지금도 경쟁국가에 비해 많지 않은 정부 보조금을 감사 지적 등을 핑계로 더 깎으려 한다”면서 “서울대가 법인화 이후 ‘외딴 섬’처럼 고립화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대학교에 따르면, 현재 연간 대학 예산은 1조 원, 병원은 1조 5천억 원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정부가 지원하는 금액은 4,500억 원에 불과하다. 싱가포르대학이나 도쿄대학에 비하면 4분의 1 수준이라는 것이다.

성 총장은 “국립대학법인은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인데 결국 세금 걷어 서울대에 예산을 주고, 이를 다시 조세로 지방자치단체에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국립대학법인을 세법상 비과세 대상으로 명시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 구조개혁 등의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구조개혁이 인원감축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입학정원, 재정지원 등을 통해 규제를 가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대학에 자율성을 좀 더 부여하고 자연스러운 선순환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입시제도에 대해 성 총장은 “섬에 살아도 내신이 좋고 발전가능성이 있는 학생은 서울대에 올 수 있어야 한다”며 “학교교육의 충실한 이수가 자연스럽게 대학진학으로 연결되는 교육생태계 조성에 서울대가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부 학과에서 하고 있는 지역균형선발을 2017학년도부터 전체 학과로 확대하고 인원도 전체 모집 정원의 23%(735명)로 늘릴 계획”이라며, “도서벽지 학생 중에 예술고교 출신이 아니더라도 잠재력이 있는 학생은 뽑아야 하며 집안이 어렵다고 서울대에 오지 못하는 인재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 취임 이후 줄곧 ‘선(善)한 인재’ 상의 정립을 위해 노력해온 성낙인 총장. 그가 그리는 미래 인재상은 무엇인지, 개교 70주년을 맞은 서울대의 비전, 입시제도, 양극화 해결 방법 등 다양한 교육현안에 대해 지난 8월 17일 서울대 총장실에서 김재춘 한국교육개발원 원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김재춘 원장 : 요즘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계신 일이나 챙기시는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성낙인 총장 : 아무래도 개교 70주년을 맞이한 서울대의 변화를 위한 미래비전이 제일 관심사입니다. 빅데이터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이터사이언스 혁신대학원과 남북의 인문사회부터 의료까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통일평화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공계는 물론이고 인문사회·경영·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전공 학과를 보유한 종합대학이라는 서울대의 장점을 살려 4차 산업혁명과 통일시대에 대비해 서울대만이 할 수 있는 초학제적 대학원을 설립하려고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를 지배해야 새로운 산업을 지배할 수 있잖아요. 서울대 같은 유수의 대학이 중심이 돼 ‘패스트 팔로어’(새로운 기술을 쫓아가는 전략)에서 벗어나 시대를 선도해야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 같은 인물이 배출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존 빅데이터 관련 석박사 과정은 컴퓨터공학이나 경영학 중심이지만 우리 대학원은 다양한 분야를 융합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신림동을 아날로그시대의 고시촌에서 환골탈태하여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관악 큐브 청년 창업밸리’로 만들 겁니다. 고시촌 일대 건물들을 임차해 미국 스탠퍼드대-실리콘밸리, 중국 베이징 칭화대-중관춘(中關村)처럼 서울대의 연구역량, 기업, 벤처캐피털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공간을 제공할 겁니다. 이를 위해 500억 규모의 창업 펀드를 만들어 서울대, 관악구와 함께 10년 내 1,000개 이상의 기술기반 벤처기업을 만들고 1만 5,000명 이상의 벤처기업 임직원과 창업 및 취업 희망자가 상주하도록 할 계획이에요. 고시를 통해 입신양명하려는 청년들이 모여들던 곳을 창업하려는 청년들이 밤새워 연구하고 토론하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바꿔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8년 3월 설립 예정인 통일평화대학원은 공학, 의학, 농학, 경영학, 법학 등 다양한 학문을 융합해 북한 바이러스부터 헌법까지 연구하는 차별화된 대학원이 될 겁니다. 민족 최대의 숙원사업인 통일을 넘어 ‘평화학’을 연구하는 곳으로서 국내 통일교육의 메카로 만들 계획입니다.
김재춘 원장 : 지난 7월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넘어 서셨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하신 일 가운데 주요 성과나 의미 있는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성낙인 총장 : 제가 취임하면서 학생들과 동료교수들에게 우리 스스로 자긍심을 되찾아 자랑스러운 서울대를 만들자, ‘선한 인재’를 양성해 국민에게 사랑받는 서울대로 키우자고 했습니다. 선한 인재는 공부만 잘해선 안 됩니다. 지(智)와 함께 예(禮)와 덕(德)을 갖춰야 해요.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과 공공선을 추구하도록 가르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정작 그런 교육에는 소홀하지 않았습니까. 우수한 학생들은 10년, 20년이 지나면 대부분 관리자가 됩니다. 관리자가 선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긍정적인 사회가 될 수 없어요. 선한 인재 양성이 중요한 이유죠.

그래서 단과대학별로 1학년 때부터 선한 리더십을 키우는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어요. 또 기초생활수급자부터 차상위계층의 학생이 학부에만 870명이나 되는데, 이들에게는 등록금을 면제해 주고 기숙사를 우선 배정해 주고 있습니다. 1인당 매달 30만 원씩 선한인재 장학금도 주고 있는데 1년이면 약 30억 원이 듭니다. 또한 작년 6월부터 시작한 ‘1000원 아침메뉴’에 이어 금년 6월부터는 저녁도 1000원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을 1,000원에 제공하면 학생들의 건강에도 좋지만 무엇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한 달에 약 5만 원을 절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학생들 사이에서 ‘총장밥’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면 반응이 좋은 모양입니다.(웃음) 물론 적자는 매년 3억 원 정도 감수해야 하지만, 다양한 모금 캠페인과 후생복지기금 등을 출연해 메울 수 있으니까. 지난 2년간 실시한 ‘선한 인재 이어달리기’나 ‘만만한 기부’ 등을 통해 총 2,480억 원의 재원을 확충하기도 했고요.
김재춘 원장 : 서울대형 발전모델 정립, 시흥캠퍼스 건립1)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하거나 대학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주요 현안이나 당면 과제는 무엇이고 어떤 대안을 준비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성낙인 총장 : 제일 큰 과제는 아무래도 법인화 문제입니다. 정부가 처음에는 모든 국립대를 법인화하는 법률안을 만들었으나, 지방 국립대들이 재정적 우려로 반대해 서울대가 먼저 해보자고 개별법이 만들어진 것이잖아요. 일본의 경우 모든 국립대가 단일법으로 법인이 된 것과 다른 점이지요. 서울대가 제일 먼저 법인이 되다보니 시행 후 나타나는 법적인 모순과 문제점들을 해결하기에 힘이 부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고등교육법상 국립대학 법인도 국립학교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서울대는 일단 법인이니까 국립대학이 아니지 않느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대표적 사례가 국립대학법인이 가진 재산에 납세의무를 부과하고 있어요. 특히 국가로부터 양도 받은 수원캠퍼스 미사용 부분에 대한 지방세(취득세 및 재산세)를 38억 7천만 원을 부과했어요. 일본은 그렇지 않아요. 국립대학법인도 국가기관처럼 비과세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어요. 국립대학법인은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인데, 결국 세금 걷어 서울대에 예산을 주고, 이를 다시 조세로 지자체에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 말이 됩니까. 그래서 국립대학법인을 세법상 비과세 대상으로 명시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유로운 점도 있어요. 과거엔 세세한 항목까지 다 지정돼 있었지만 지금은 원칙적으로 총액기준으로 예산을 받아요. 예산을 짜서 보고하고 이를 확정 받아 지원을 받으려면 내부적으로는 항목이 다 있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예산 사용에 융통성은 있습니다.
김재춘 원장 : 올해는 서울대학교가 국립 종합대학교로 설립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학의 역사로 70년은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경쟁 상대인 외국 대학들에 비해 재정적으로 열악한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세계 유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서울대학교의 미래비전은 무엇입니까?
성낙인 총장 : 지난 70년간 서울대학교는 국가적 관심과 국민들의 성원, 서울대 교수, 학생, 직원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이제 서울대학교의 연구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으며, 일부 분야는 국제학계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문연구기관으로서 서울대학교가 본연의 모습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문제를 찾고 쟁점을 설정해 주체적 학문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한국적 문제와 해법을 통해 세계를 진단하고 선도하는 방향으로 나가고자 합니다. 글로벌 사회에서 학문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면서 서울대인의 영혼이 깃든 독자적 학문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앞서 말씀드린 미래 통일시대에 대비한 전문인력 양성, 통일평화전문대학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학생들에 대해서는 ‘선한 인재’ 양성 등 공동체주의를 배양하는 지식공동체로 거듭나야 함을 충분히 이야기했으니, 교수들에 대한 비전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국립대학법인 체제로 성공적 전환을 통해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전문책임경영 체제 및 분권형 운영체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국제적 수준의 연구역량을 갖춘 전임교원에게 3~5년간 강의 감면 등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연구년제도 실시할 예정이고요. 산학협력 교원제도도 획기적으로 바꿀 계획입니다. 이 제도는 교수가 안식년 1년 동안 기업체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인데요, 1년으로 모자라면 2∼3년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상호협력의 구식 모델이 아니라 학문과 업계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고 ‘탈경계형 인재’를 배출해야 미국의 구글 같은 회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젊은 교수들을 위해 ‘조건 없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임용 2년 이내 부교수와 4년 이내 조교수에게 매년 1억 원(실험분야 1억 원 내외, 이론분야 3,000만 원 내외) 최대 9년간 연구비를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3년마다 단계평가를 통해 계속 지원여부를 결정할 계획입니다. 금년에는 31명에게 20억 원을 지원했습니다. 단기적인 정량지표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 호흡으로 아이디어를 시험해볼 수 있는 환경을 교내에서부터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내 임기에 시작해 차차기 총장 재임쯤에는 빛을 볼 것이라 생각합니다. 10년 후, 아니 더 나아가 20년 후 대한민국에서 세계적 연구성과를 산출할 인큐베이팅 역할을 할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어요.
김재춘 원장 : 4차 산업혁명의 도래 등 사회경제구조의 변화는 대학교육의 기능 및 역할에 대한 성찰과 혁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물론 우리 학문의 생태계도 산학협력 없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항에 놓여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와 전환기에 사회와 시대가 요구하는 대학교육의 혁신과 새로운 인재양성을 위해 정부와 대학은 어떤 방향 모색과 정책들을 취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성낙인 총장 : 대학에 대한 투자가 증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 수준이 크게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크게 늘어난 데는 교육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투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적 투자는 한국경제가 필요로 하는 고급인력 및 관리자를 양성시키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단기적 효과를 보기 어려운 대학에 선뜻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미래 시대의 핵심인 융복합 기술의 발전은 기업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반드시 대학과 정부가 함께 협력해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정부의 투자와 관심이 매우 중요합니다.
김재춘 원장 : 학령인구 급감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학 구조개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대학구조개혁법은 통과되지 않았고, 구조개혁 방식에 관한 논의도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법안 통과가 시급하고 구조개혁도 내실 있게 추진되어야 하는데, 대학 구조개혁에 관한 총장님의 생각과 제언을 듣고 싶습니다.
성낙인 총장 : 무엇보다 과거 입학정원, 재정지원 등을 통해 규제를 가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대학에 자율성을 좀 더 부여해도 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 원장님도 지적하셨듯이, 설립준칙주의로 대학이 많이 생겼지만 학령인구 감소로 시대가 바뀌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 특성화에 실패한 대학들 가운데 도태되는 대학도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버티고만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대도 100여 개의 과가 있지만, 누구나 알 만한 전국의 50개 대학은 전부 다 100개에 가까운 과를 가지고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이런 예는 잘 없지 않나요? 특히 사립대학은…. 기회만 되면 정원 늘리고 과를 만들어 왔는데, 기존 학생과 교수가 보호되는 과정이 미흡해 문제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선순환의 길로 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조개혁이 인원감축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가 인원감축을 전제로 재정 지원을 하다 보니 서울대는 지원하지 못 하는 사업도 많습니다. 현재 서울대 학부 입학정원은 거점 국립대학 중 제주대 다음으로 적은데 말입니다.
김재춘 원장 : 대학 구조개혁과 함께 대학 재정지원 사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개별 대학이 건학이념과 특성을 살려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대학이 먼저 ‘우리는 무엇을 하겠다’고 사업을 구상해 제출) 이를 평가해 예산을 주는 방식의 ‘대학 재정지원사업 개편시안’을 발표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성낙인 총장 : 참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교육부도 잘 하려고 하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BK사업을 예를 들면, 일본 모델을 많이 참조했더라고요.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도 좋지만 이 과정에서 오히려 퇴출 대학이 살아남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니까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짤 때 대학들하고 의논을 좀 하면 좋겠어요. 이화여대 사태만 해도 그래요. 평생교육 단과대학 같은 프로그램은 사실 국립대학이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 프로그램은 난 전혀 모르던 프로그램이에요. 그리고 보니까 전부 사립대학만 있고…. 그런 프로그램은 국립대학이 해야 되는데 왜 사립대학으로 갔는지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서울대에서 하라면(내부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되겠지만) 신중히 점진적으로 할 용의가 있어요.
김재춘 원장 : 총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재정지원사업도 인원감축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국립대학이 아닌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화제를 좀 바꿔볼까요? 부산대를 비롯한 전국 거점 국립대 총장들이 지역별로 ‘국립대 연합체제’ 구축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요. 저출산에 따른 대학 입학생 급감에 대비해 기존 국립대를 특성화해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인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성낙인 총장 : 거점 국립대총장협의회가 지난 7월 22일 부산대에서 ‘국립대 연합체제’ 방안을 제시했어요. 유사 중복학과의 통폐합, 강점 분야 특성화, 대학 간 특화분야 통합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지요. 방향은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한 지역에 여러 개의 국립대학이 각기 따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앞으로 국·공립대학 스스로 협업을 통한 방향 설정을 통해 국민의 지지와 명분을 얻고 동시에 비용을 절감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대학 간 협치 거버넌스를 구축하면서, 대학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지요.
김재춘 원장 : 최근 대학총장들이 대학의 발전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서 영·유아교육부터 초·중등교육에 관심을 갖고 ‘공교육 정상화’에 초점을 둔 대입제도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서울대 입시제도를 평가해 주시고, 앞으로의 계획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성낙인 총장 : 제도라는 게 장단점이 있지요. 제가 서울대에 입학할 당시엔 5개 과목 자체 시험을 쳤어요. 내신은 합격에 상관이 없었던 셈입니다. 고 조영래 변호사가 고교 3학년 때 시위를 하느라 정학까지 당했지만 서울대에 수석 입학한 일화는 유명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입시제도가 달라졌어요. 항간에 ‘서울대 교수는 아이를 서울대에 못 보내는데 고3 담임은 아이를 서울대에 입학시킨다’는 말이 있다지요. 워낙 입학전형이 복잡한 탓일 겁니다. 그래서 학생부종합전형(신입생 정원의 75%) 위주로 단순화했습니다. 수시에선 내신과 지역균형선발, 정시에선 수능 중심으로요.

일부 학과에서 하고 있는 지역균형선발을 미대·사범대 체육교육학과·음대·자유전공학부 등 2017학년도부터 전체 학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전체 모집 정원 중 23%(735명)를 지역균형선발로 뽑을 겁니다. 도서벽지 학생 중 예술고교 출신이 아니더라도 잠재력이 있는 학생은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안이 어렵다고 서울대에 오지 못하는 인재는 없어야 하니까요.

교육부가 대입에서 수능 영향력을 낮추려 한다는데 고려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섬에 살면서 내신 좋고 발전가능성이 있는 학생은 서울대에 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학교교육을 중시하는 전형 운영을 통해, 입시를 위한 인위적 준비가 아니라 학교교육의 충실한 이수가 자연스럽게 대학 진학으로 연결되는 교육적 생태계 조성과 정착을 위해 서울대가 앞장서 나갈 것입니다.
김재춘 원장 : 아이들이 꿈을 키우고 끼를 찾을 수 있도록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전면 실시되고 있습니다. 토론·체험식 수업으로 교실이 변화되고 있고, 창의·인성교육, 감성과 논리의 융합능력을 중시하는 교육이 확산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의 현주소와 최근의 교육적 변화와 대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성낙인 총장 : 요즘 초중고교 현장에서 깊이 있는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학습방법과 독서, 토론역량 등을 높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서울대가 지향하는 ‘선한 인재’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해 기대가 큽니다. 이런 교육적 변화에 부응해 서울대는 선한 의지를 가진 미래의 지도자를 배출하고자 선한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선발해 키우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김재춘 원장 : 대학은 지식과 정보의 핵심통로로 경쟁력 있는 부가가치적 지식을 창출하는 원천인 동시에 세계적인 선진지식을 받아들이고 국내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국제화 추세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의 국제화 지수는 아직 낮은 편이지 않습니까? 원인은 어디에 있고 도약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성낙인 총장 : 대표적인 세계대학평가기관인 QS 및 THE에서 제시하는 대학의 국제화 평가지표는 주로 외국인 교원·학생의 비율로 구성돼 있습니다.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과 영어가 상용화된 싱가포르나 홍콩의 대학에 비해 외국인 교원·학생 유치가 어려워 국제화 지수가 낮게 나타나고 있는 거예요. 홍콩대와 싱가포르대가 우리보다 세계 서열에서 앞선 또 다른 이유는 영어에 있습니다. 영어가 공용어라 소통이 잘되니까 뛰어난 외국인 교수를 많이 영입해 좋은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지요. 저희 대학에도 현재 외국인 정교수가 100명이 넘었고, 영어수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우수한 외국인 교원확보를 위해 외국인 교수 가족을 위한 아파트를 확충하고 캠퍼스 주변 학교와 협력해 외국인 학급운영, 외국인 교수에 대한 별도보수·복지제도 개선, 외국인 교수의 의사결정기구 대표 참여, 총장과의 간담회 정례화 등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또 학생들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SWP(SNU in World Program)사업을 확대 시행하고 있어요. 학부 4년 동안 한번은 4~8주간 해외연수를 다녀올 수 있도록 학교가 일부 연수비를 보조해 주고 있고, 최근 여름방학 때는 세계 38개국의 학생 5백 명이 여기 와서 공부하고 갔죠. 외국인 학생 유치를 위해 기숙사를 신축하고 글로벌 교육 여건에 적합한 주거환경을 조성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김재춘 원장 : 한국교육개발원은 최근 교육·정치·경제·과학 등 각계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2035 미래교육의 시나리오’를 조사해 발표했는데요. 전문가들은 예상 시나리오에서 교육분야의 시장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형평성 요구가 높아져 정책과 제도에 반영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국경과 제도를 초월해 최상의 교육기회를 갖는 상류층과 국가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 사이에서 중산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교육 양극화 해소를 위해 어떤 조치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성낙인 총장 : 우리 사회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압축적으로 최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가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빠른 성장과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걸 놓친 거지요.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갈등은 증폭됐지만,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던 탓입니다. 양극화 문제도 여기에서 비롯된 산물이고요. 지금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합니다.

민주화 사회에서는 국민이 생활 속에서 법치를 실천해야 합니다. 시장에도 규칙이 있는데 가진 사람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대개 가진 자의 승리로 이어지기 마련이지요. 규칙이 바뀌어야 합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국가가 경제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하잖아요? 여기에서의 규칙은 가진 자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마음을 갖는 것이지요. 재벌도 재산이 조 단위가 됐으면 오너가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합니다. 옛날 경주 최 부자가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라고 강조했는데, 이런 정신을 본받아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게 문제인 것이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김 원장님이나 저나 다 지방에서 올라온 시골사람들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은 서울대를 나와 서울대 교수가 되고 서울대 총장이 되면서 사회적 위치가 높아졌잖아요. 어려운 환경이지만 젊은 세대들도 긍정적인 사고와 힘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우리 사회가 성장, 발전보다 성숙에 무게를 두고 다 함께 각자의 길에서 만족하고 자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중에는 섬·시골 출신이거나 어려운 가정 출신이 많아요. 어려운 환경 출신이지만 명석한 인재들이 적어도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학업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해 ‘선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총장으로서의 사명이자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김재춘 원장 : 따님이 두 분2)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녀교육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성낙인 총장 : 나는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집에서는 전혀 인기 없어요. 가부장적인 옛날 스타일이니까 딸들이 좋아하지 않아요.(웃음) 사실 첫째에게는 공부시킨 경험이 없어요. 중3 겨울방학 때도 고등학교에 가면 못 노니 지금 실컷 놀라고 했을 정도예요. 그때 다른 아이들은 다 선행학습을 했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있어서 둘째는 남들처럼 학원에 보냈죠.

주변에 베풀고 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저는 국민소득이 5백 달러도 안 되던 시대에 대학을 졸업했어요. 다들 경제적으로 어려워 나눔의 손길이 절실했지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도 급식비 못내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살림이 넉넉한 집에서 급식비를 내주면 좋은데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몇 번 내줬습니다. 어머니가 남을 잘 도와주셔서 저도 배운 거죠(웃음).

그리고 체벌은 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 참았다는 거지. 비록 어리더라도 자기 자식이라고 함부로 대하면 안돼요. 자식에게 인격적 예우를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은 더 나이가 들고 나서 든거지만. 그래서 자식들에게 문자나 메일 보낼 때 하대하는 표현을 안 썼으면 좋겠어요. 주례를 하면서도 늘 그걸 강조하는데 부부 간에도, 물론 나도 실천 못 하고 있습니다만, 가능한 존댓말을 쓰는 게 좋아요. 자식하고든 부부 간에든 다툼이 있을 때 존댓말을 안 쓰면 완전히 끝까지 가버리니까요. “야, 너 뭐해”보다는 그런 식으로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게 자녀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김재춘 원장 : 한국교육개발원에 대해 가지고 계신 바람이나 기대, 제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성낙인 총장 : 미래 교육정책 연구에서 한국교육개발원이 선도적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내외 네트워크 활성화를 통해 연구성과를 널리 확산하고, 특히 대학과의 협력방안이 강화된다면 보다 나은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겁니다. 서울대학교도 교육정책연구 활성화와 이를 통한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교육개발원과 다양한 협력방안을 강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성낙인 서울대학교 총장

성낙인(66) 제26대 서울대학교 총장은 친화력이 뛰어나며 원칙과 법치를 중시하지만,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따뜻한 리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의 이름을 ‛즐거운 호랑이’라고 설명하며 한자 풀이를 ‛Happy(낙)·Tiger(인)’라고 소개하는 등 특유의 유쾌한 성격도 상대를 매료시키는 요소로 꼽힌다. 좌우명은 ‘인격체로서의 인간 존중’이다.

1950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프랑스 제2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부터 19년간 영남대에서 재직하다가 1999년 서울대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대 법과대학장, 평의원회의원 등 학내 여러 보직을 거쳤다. 2014년 7월 26대 서울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법대출신 서울대 총장으로는 1995년 20대 이수성 총장 이후 19년 만이다.

한국 법학계에서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 받아 왔다. ‘헌법학’ ‘헌법소송론’ 등 30여 권의 저서와 논문 200여 편을 냈다. 프랑스 유학 시절인 1987년에 쓴 논문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상 각료제도’는 당시 아시아권 학자로는 최초로 프랑스 ‘정치헌법학전서’에 실리기도 했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헌법학자가 할 일이 많다”는 소신을 가져온 성 총장은 입법·사법·행정을 가리지 않고 공적 영역 활동에 참여해 왔다. 한국공법학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장, 대검 진상규명위원장, 경찰위원회 위원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세계헌법학회 한국지부 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1)
이 인터뷰는 서울대가 시흥캠퍼스 조성 실시협약을 맺은 지난 8월 22일보다 앞선 19일에 진행됐기 때문에 시흥캠퍼스 현안에 대한 답변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2)
성낙인 총장은 슬하에 2녀를 뒀다. 큰딸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에서 미술사 석·박사 과정을 마쳤고, 작은딸은 서울대 인문대를 나왔다.
▲ TOP 싸이월드 공감
서울특별시 서초구 바우뫼로 1길 35(우면동) 한국교육개발원 keditor@kedi.re.kr Tel.02-3460-0319 Fax.02-3460-0151
Copyright ⓒ 2011, KEDI.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