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예술의 중심 도시, 파리가 주는 교훈
김재춘 /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싸이월드 공감
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좋아한다. 예술과 문화의 중심도시 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의 파리는 ‘아름다운 시대’를 뜻하는 ‘벨 에포크(La belle epoque)’라 불린다. 이 시기에 파리는 예술과 문화가 번성하면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풍요와 평화를 누렸다. 세계 현대 예술사의 거장들, 뭉크, 피카소, 모딜리아니, 샤갈, 몬드리안, 에른스트, 마그리트, 달리 등이 파리를 동경하고 파리를 거쳐 갔다.

그러나 파리가 항상 예술과 문화의 중심 도시였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파리는 세계 예술과 문화의 중심도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파리를 세계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는가?

베르사유 궁전이 지어지던 17세기의 프랑스는 절대왕정의 정치적 기반 위에서 국가 차원에서 예술을 집중 육성하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르네상스로 화려하게 부활한 로마의 예술을 따라잡기 위해 프랑스는 본원을 로마에 둔 왕립아카데미를 설립하였다. 개인 공방에서 기능 훈련을 받는 예술가가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지성을 갖춘 교양인 예술가를 길러내고자 하였다.

프랑스는 예술가를 선발하여 로마로 유학을 보냈다. 로마에서 르네상스 예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프랑스 예술계를 이끌었고, 살롱전(Salon de paris)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살롱전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살롱전 입상을 위한 족집게식 화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프랑스 예술은 한편으로 로마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발달했지만, 다른 한편 로마의 르네상스 예술을 넘어서거나 프랑스 자신만의 예술을 발달시킬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살롱전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예술은 르네상스 예술의 모방이라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살롱전 초기에는 살롱전 출품자격을 왕립아카데미 소속 화가로 제한하였고, 프랑스 혁명기를 거치면서 출품자격을 일반화가에게 개방했지만 여전히 살롱전 심사위원을 왕립아카데미, 즉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교수진으로 구성하는 폐쇄성을 유지하였다.

살롱전의 폐쇄성에 반발하여 낙선전(Salon des Refuses)이 별도로 열리게 되었다. 낙선전을 통해 심사도 탈락도 없는 전시회가 가능해졌고, 신진 화가들의 작품들도 전시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로마의 르네상스 화풍과는 전혀 다른 그림인 인상주의 작품도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모네의 ‘인상 : 해돋이’나 고흐의 ‘까마귀가 있는 밀밭’과 같은 그림이 등장하게 되었다.

위의 이야기는 파리가 어떻게 세계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는가에 대한 개괄적인 묘사다. 이런 파리의 예술사는 무엇보다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려고 노력하는 우리 교육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첫째, 로마의 르네상스 예술을 표준삼아 살롱전을 개최해 온 프랑스의 시행착오가 주는 교훈이다. 르네상스 예술을 모방하면서 로마가 되고 싶었던 파리, 살롱전 출품자격의 제한, 살롱전 심사위원의 폐쇄성 등은 세계 예술의 중심지 파리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로마를 닮고 싶은 파리 예술은 프랑스 예술을 로마 예술의 아류로 만들었으며, 새로운 예술 세계를 결코 창조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개방을 통한 차이의 존중’ 또는 ‘차이 존중을 위한 개방’을 통해 새로운 예술의 창조가 가능하다는 교훈이다. 살롱전에 맞섰던 낙선전, 이후의 다양한 유형의 전시회의 등장으로 인상주의 예술이 대중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인상파 작품을 “캔버스 위에 물감을 대강 발라 놓고 거기에 서명을 남겨 놓은 것”이라고 비판한 당시 한 주간지 기자의 교조적 비평은 변화에 저항하면서 옛 가치와 기준만을 고수하는 자의 어리석음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프랑스 예술 발전의 전개 과정은 우리 교육과 상당한 유사성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우리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은 세계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다. 마치 파리의 살롱전 출품 작품들이 로마의 르네상스 예술 작품의 수준을 넘나들 듯이 말이다. 살롱전의 규제 완화, 낙선전 개최 등 구습의 변화와 혁신을 통해 인상주의와 같은 프랑스만의 예술을 창조하였듯이, 우리도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구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통해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추격형 교육을 통해 우리 교육은 학업성취 측면에서 세계 최고가 되었다. 그러나 교과 공부 선호도나 배움에 대한 관심은 아쉽게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단순히 높은 성취 수준보다도 배우는 과정을 즐기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즉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유학기제를 필두로, 2015 개정 교육과정 등을 통해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닌 창조자(First mover)를 길러내려는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성공적으로 뿌리 내린다면 한국이 세계 교육의 중심국가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개발」이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고자 고민하는 교육정책 개발자, 학교 경영자, 현장 교사 등을 포함한 모든 교육 관계자들에게 큰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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