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독일·영국의 시민교육
윤석만 / 중앙일보 기자·중앙인성교육연구소 사무국장·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 자문위원 싸이월드 공감
Ⅰ. 낮은 시민의식, 부실한 시민교육
시민교육의 필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학교에선 시민교육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나마 대학에선 경희대가 3학점 필수과목으로 시민교육을 교양으로 가르치고 있는 정도다. 초·중·고교에선 사회시간에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이론식 수업 외엔 제대로 된 시민교육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7년 4개국 초등생 2,349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교실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질서와 규칙을 배우고 실천한다.’에 답변한 한국 학생은 18.4%에 불과했다. 프랑스(63%), 영국(54.3%)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교실에서 타인을 이해·존중하는 걸 배우고 실천한다.’는 질문에도 한국(15.9%)은 프랑스·영국(60%)의 4분의 1밖에 안 됐고 일본(28.7%)과도 차이가 컸다.


이처럼 어릴 적부터 시민의식을 기르지 못하다 보니 성년이 되어서도 치러야할 비용이 많다.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신뢰와 규범 등 사회적 자본의 수준이 낮아 발생하는 갈등비용을 추산해 보니 연 82조∼246조원에 달했다. 그만큼 우리는 시민교육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 때문에 시민의식의 수준은 매우 낮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시민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해외 선진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문화가 다른 선진국의 것을 그대로 우리에게 이식할 순 없지만 수십 년 또는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교육체제를 다듬어온 그들의 시민교육을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겪어야 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Ⅱ. 프랑스의 시민교육
학교마다 조금씩 상황은 다르지만 프랑스에선 수업은 물론 학교생활에 대한 거의 모든 부분을 토론을 통해 결정한다. 어떤 학교들은 생활규칙도 학생들끼리 토론으로 결정한다. 이중 핵심적인 것을 뽑아 학부모의 사인을 받고 학교 전체 교칙으로 정한다. 토론으로 교칙을 정할 만큼 학생의 자율성이 존중되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은 막중하다. 교칙을 두 번 어기면 부모님을 모셔 와야 하고 같은 이유로 세 번 어기면 퇴학이다.


프랑스는 1985년 초·중학교에 ‘시민교육(Education Civique)’ 을 의무화 했다. 1999년부터 고등학교에서도 ‘시민·법률·사회교육(Education Civique Juridique & Sociale)’이라는 이름으로 시민교육을 하고 있다. 1882년 초등교과에 「시민·도덕교육」과목이 도입됐다가 1960년대 이후 사라진 것을 1885년 다시 되살린 것이다.


프랑스에서 시민교육의 역사는 깊다. 19세기 이후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가장 큰 목표였다. 민주주의를 확실히 뿌리내림으로써 구체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1960년대 이후 잠시 사라졌던 것은 시민교육이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는데 학교폭력 등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자 다시 필수로 지정됐다.


프랑스 시민교육 교과서는 프랑스 공화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질문과 토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구성돼 있다. 자유, 연대, 인권, 노동, 공동선 등이 주요 가치다. ‘시민교육’시간엔 역사적 사건과 다양한 사회 이슈를 놓고 토론한다. 교과서도 구체적인 사례와 사진, 그래픽 등이 많고 각 주제마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질문들이 제시돼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3학년이 배우는 ‘시민교육’ 교과서 ‘자유’단원에는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그림이 제시돼 있다. 그 밑에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인물의 행동을 찾고 무엇이 잘못인지 생각하도록 했다. 교실에서 떠들거나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독점하는 등 구체적 상황을 그림으로 제시하고 자연스런 토론을 유도하는 교육방식이다.


예를 들어 아띠에(Hatier) 출판사에서 만든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 시민교육 교과서를 살펴보면 ‘모든 사람은 자유롭다’ 주제 아래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자신의 자유가 충돌할 때 고려해야 할 것 등을 설명하고 있다. 또 ‘연대’라는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에 존재하는 빈곤의 다른 형태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이런 불행에 이르게 한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가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이 차례로 제시된다.


프랑스의 아셰트(Hachette) 출판사가 낸 초등 시민교육 교과서의 일부를 보면 ‘프랑스 시민되기’라는 대주제 아래 ‘어떻게 시민들은 그들의 일상에 참여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해 보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교과서 곳곳에 ‘우리는 이런 도로에서의 군중의 모임을 뭐라고 부르는가’, ‘사람들은 왜 모였는가’와 같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질문들이 제시돼 있다. 다양한 발문을 통해 교사는 학생들의 토론을 유도하고 학생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펼치며 시민의 덕목을 길러 나간다.


프랑스 시민교육 관련 연구를 진행한 정현이 교사는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중요한 가치들을 모두 질문과 답변, 토론의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습득할 수 있도록 교과서가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Ⅲ. 독일의 시민교육
이웃나라 독일도 시민교육 선진국이다. 독일과 한국 시민들의 가장 큰 차이는 ‘관심과 참여’다. 독일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국가의 구조부터 인권이나 노동과 같은 내용을 배운다. 노동현장에 직접 가는 현장체험 학습이나 토론도 활발하다. 각 정당의 정치이념이나 지지율,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서도 자세히 가르치고 토론한다. 그러다 보니 어린 친구들도 정치와 사회를 생활의 일부로 여기게 되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 학생들에게 정당이나 정치, 노동 현안에 대해 가르치는 걸 터부시 여기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 같은 독일의 시민교육은 현지에선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이라고 불린다. 이 교육은 1976년 제정된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의 원칙 아래 진행된다. 그 내용은 △교화나 주입식 교육을 금지한다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에서도 역시 논쟁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학생은 어떤 정치적 상황과 그 자신의 이익이나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있고 또한 그에 따라 당면한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독일이 추구하는 가치, 자유민주주의와 정치질서, 인간의 존엄성, 개인적 자유 등을 구체적으로 학습한다. 또 독일 시민교육의 큰 특징은 ‘평생교육’ 형식으로 꾸준히 이뤄진다는 점이다. 학교 밖에서는 연방정치교육센터(Bundeszentrale fur politische Bildung)와 지방정치교육센터(Landeszentrale fur politische Bildung), 시민대학(Volkshochschule) 등을 통해 시민교육이 이뤄진다.
특히 각 지역마다 산재해 있는 정치교육센터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의 장이다. 도시마다 있는 교육센터에서 언어, 인문학, 민주주의와 시민 등에 대한 다양한 강의를 듣는다. 이규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독일 시민교육은 간단히 말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확립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온 국민을 대상으로 평생교육을 한다”며 “인권과 같은 민주주의와 관련된 가치들을 시민교육의 범주 내에 다 포함시키고 실생활에서도 녹아들 수 있도록 제도화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독일이 시민교육에 앞장선 이유는 온 국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했기 때문이다. 나치즘을 겪으며 교육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고 국가권력을 경계할 수 있는 깨어 있는 시민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성숙한 시민 육성이 독일 재건을 위한 가장 필요한 전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처럼 시민교육을 명칭으로 한 교과목이나 교과서가 따로 있진 않다. 보통 중등학교 과정에서 시민교육을 하는데 주로 사회시간에 수업이 이뤄진다. 앞서 설명한 대로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제시하고 학생들이 토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갖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교과서 역시 교사가 직접 가르치도록 설계돼 있지 않고 학생들이 주제와 관련해 관심 분야를 정하고 자발적으로 팀을 만들어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짜여 있다. 수업시간에서의 토론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주제와 관련해 설문조사나 캠페인, 인터뷰 등을 통해 보고서나 신문 등 결과물을 함께 만들어 보도록 한다.
Ⅳ. 영국의 시민교육
영국의 경우도 2002년부터 중등학교(Secondary Schools)에서는 필수교과로, 초등학교(Primary Schools)에서는 선택교과로 시민교육이 포함됐다. 중등학교에서는 시민교육(civic education)이라는 교과서를 통해 법적·인간적 권리와 사회적 책임감, 다양성과 상호 존중의 필요성 등을 가르친다. 또 의회제도와 정부형태, 선거를 통한 참여의 중요성 등이 주요 내용이다. 영국에서 학생들은 특정 정당의 정책과 이념을 놓고 토론한다. 토론이 입시 수단처럼 여겨지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매우 당연한 일상이다. 영국은 지역사회·지방정부가 주축이 돼 2000년대 초부터 전 국민 대상으로 시민의식을 조사하고 있다. 자원봉사 경험, 지역 이슈에 대한 참여 등 광범위한 의식조사를 통해 시민의식을 진단하고 이를 높이기 위한 정책을 입안하는데 반영한다.
Ⅴ. 2015년 교육 화두는 시민·인성 교육
“올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을 육성해 사회발전에 이바지한다.”
지난해 12월 29일 국회에서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의 제1조 (목적)에 명시된 말이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정의화 국회의장은 “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들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선진국가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이날 출석의원 199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이 법을 통과시켰다. 인성교육과 시민교육을 의무로 규정한 세계 최초의 법안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의 제정은 우리 교육에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밑바탕을 이루는 근본 철학을 성찰하게 만들었다. 물질적 성장 이면에 가려진 정신적 성숙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을 양성하는 시민교육은 우리 교육의 나아갈 가장 중요한 방향이 됐다.


특히 올 5월은 우리 교육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국내외적으로 교육계의 큰 두 개의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 먼저 국내적으론 김영삼정부가 내세웠던 5·31 교육개혁이 20주년이 된다. 경쟁과 자율, 국제화 등이 핵심 기치였던 5·31의 공과를 따지고 향후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갈 교육철학을 제시한다. 현 정부가 그 핵심으로 삼고 있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둘째는 유네스코가 주최하는 ‘2015 세계교육포럼’이 한국에서 열린다. 큰 주제는 유네스코가 정하게 되지만 한국은 2개의 세션에서 개최국으로서 의제를 제시한다. 하나는 교육을 통한 한국의 발전 사례를 공유하는 것이고 둘은 ‘세계시민교육’이다. 이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월 두바이에서 열린 거버넌트 서밋에서 기조 연설한 내용과 맥락이 같다.


결론적으로 인성교육과 시민교육은 우리 교육의 중요한 화두다. 앞서 인성교육진흥법의 목적에서 밝힌 것처럼 인성교육은 바른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다. 그 중에서도 시민교육은 사회 공동체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갖춰야할 핵심역량에 집중한다. 이처럼 시민교육은 우리 교육이 가장 신경써야 할 분야이고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꼭 필요하다. 글로벌 선진국가로 발돋움하려는 2015년 대한민국에서 시민교육의 초석이 잘 다져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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