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진흥법 통과의 의미와 과제
안양옥 / 한국교총 회장·서울교대 교수 싸이월드 공감
Ⅰ. 서론 : 인성교육진흥법 통과의 의미
지난해 12월 29일 국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인성교육진흥법’이 통과되었다. 이는 인성교육을 법제화해야 할 만큼 우리사회에 인성의 기본가치가 무너졌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인성교육을 위한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과 자각의 결과였다. 인성교육진흥법의 제정은 역대정부가 기존에 표방하던 창의성 우선의 교육기조를 인성에 방점을 두도록 유도한다는 상징성과 함께, 법적 토대를 통해 인성교육 정책의 항존성을 담보하게 되었다는 실체적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첫째,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 20여 년간 지속되어온 교육패러다임을 인성교육으로 전환시키고, 둘째, 교원의 교육활동에 대한 정체성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 더 큰 의의가 있다.


돌이켜 볼 때, 20년 전 5.31 교육개혁은 교육을 둘러싼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학교 및 교원 등을 교육공급자로 규정짓고 그들 간의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였고, 교육수요자의 요구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해 수월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교육부문에서 시장기제가 활성화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 왔고, 이후 20년 동안 수요자중심 교육이 우리 교육의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괄목할 만한 교육의 양적 성장을 이뤄냈지만, 한편으로 직업선택의 수단으로서의 교육, 소모적 경쟁교육에 치중하면서 인성교육은 교육적 당위성만 되풀이될 뿐 교육현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1949년 제정된 교육법 이래 현행의 교육기본법에 이르기까지 내세우고 있는 ‘인격적 완성’에 대한 교육목표와 교육이념은 사라진지 오래고, 우리 교육에는 점수따기 경쟁과 입시준비교육만 남아 있다는 뼈아픈 비판이 이어져 왔다. 그런 과정에서 교육을 영리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교육은 그 규모와 폭을 지속적으로 넓혀 나가면서 학교교육의 본질적 교육활동을 더욱 위축시켜 왔다.


이런 시점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의 제정은, 지난 20여 년간 계속적으로 강조해 왔으나 늘 입시위주 교육 등에 밀려 홀대 받아 왔던 인성교육이 기지개를 펼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아가 그간의 우리 교육의 부정적인 면을 치유하고 극복하면서, ‘인성교육’으로 한국 교육패러다임의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는 교육사적 전환점이 마련된 것이다.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의 또 다른 의의는 교원의 교육활동에 대한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인식의 전환과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랜 기간 교육에서의 시장원리가 강조되면서, 교원은 소위 교육이라는 상품을 파는 공급자이자 서비스 종사자로 치부되어 왔다. 이 가운데 교원의 이미지는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을 완성된 인간으로 이끌어가는 ‘스승’의 모습에서 범속화(凡俗化)된 ‘지식 전달자’로 추락하였고, 종래에는 학원 강사와 비교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교직의 전문성보다는 민주성과 책무성을 중시하는 관점으로 사회적 인식 변화가 진전되면서, 교원의 교육활동은 인성교육 등 학생을 훈육하는 적극적인 역할보다는 기계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소극적 역할을 강요받는 환경에 봉착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상은 인격적 완성과 사회화를 위해 학생 스스로 연단(鍊丹)하고 극기(克己)하는 과정과 개인의 욕구를 억제하는 경험을 통해 교육적 가치를 체득하게 하는 수업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관점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의 제정은 오랜 수요자중심 교육에 경도되면서 왜곡되어온 학교교육과 교원의 교육활동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향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원이 이제는 학교교육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또 단순 지식 전달자 및 학업성취의 조력자에 국한된 역할이 아닌 학생의 전인적 성장에 적극적인 개입과 역할을 기할 수 있는 당위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Ⅱ.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의 과정
인성교육진흥법의 제정은 정부 주도가 아니라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이하 ‘인실련’) 등 민간의 노력으로부터 정책의제가 형성·확산되고, 이를 정치권이 법률제정으로 화답한 것이라는 점에서 여타 일반적인 법률제정과는 차별화되는 의미가 있다. 또한 법률 도입의 논의에서 제정에 이르기 까지의 과정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뤄졌는데, 이는 민간운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인성교육 실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이뤄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인실련은 지난 2012년 7월 24일, 한국교총의 주도로 160여 개 기관 및 단체가 뜻을 같이하면서 결성됐다. 한국교총이 인실련 창립을 주도하게 된 것은 2012년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학교폭력에 못 이겨 결국 자살에 까지 이르게 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총리실 산하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출범하여 7개 부처 장관과 민간위원이 한 자리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였으나, 필자가 이 과정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정부차원의 대책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정부 주도의 단속(斷續)적·대증(對症)적 접근방식으로는 학교폭력 문제의 근원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종합적·예방적 대책으로 가정-사회-학교가 공동으로 책임의식을 갖는 인성교육 실천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는 지난 20여 년간 인성교육이 강조되어 왔으나 그 당위성의 인식 수준에 비해서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정책적 수단과 국민적 운동이 없었다는 반성적 성찰의 결과이기도 했다.


인실련의 출범으로 시민사회의 핵심주체들이 저마다 추구하는 고유목적사업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범사회적 연대를 통한 인성교육 실천운동의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후 인실련은 300여 기관 및 단체가 참여하면서, 인성이 실력이자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가치라는 신념으로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주력해 왔다. 그리고 2013년 2월에는 국회에서 인성교육실천포럼이 구성되면서, 인성교육의 항존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서 법률제정이 이뤄졌다. 이제 공은 정부에게 넘어가 있다. 법률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올바른 시행령의 제정에 정부의 정책적 대안과 책무성을 보여줄 차례이다.
Ⅲ. 인성교육 정착을 위한 시행령의 방향
2012년 7월 24일 출범한 인실련이 정확히 3주년이 되는 금년 7월 21일에는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다. 그 때까지 법률의 실효성을 담보하고 인성교육의 추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행령을 제대로 만들고 세심하게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시행령 제정에 특히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정부가 인성교육이 이뤄지는 가시적인 과정과 결과물에 치중하면서, 학교현장과 괴리되고 또다시 교원이 객체가 되는 제도적 방향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과거 숱한 교육정책들이 그 취지에 맡는 지원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관성적으로 학교와 교원의 변화에만 의존해 추진하는 가운데 교원의 피로감을 누적시키면서 실패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행령이 ‘학생’이 아니라 인성교육의 시행 주체인 ‘교원’을 대상화해서 연수 등의 교육과 성과평가 등에 주안점을 둔다면 과거의 실패사례를 답습할 뿐이다. “학교와 교원은 따르라”라는 강요된 방식의 정책으로는 단기적·표상적·형식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정책의 시행주체인 교원의 마음이 담긴 능동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일례로 인성관련 위원회의 학교 설치, 교원에 대한 의무연수 등의 강제적 정책은 학교에 또 다른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가운데 인성교육 진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을 확산시킬 것이다. 시행령은 인성교육을 위한 교원들의 헌신과 열정, 자발성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에 주안점을 두고, 교원이 자기성찰을 통한 자발적 전문성 촉진과 의지 배양, 인성실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다음으로 시행령은 종래의 관(官) 주도형 정책이 아닌 민(民) 주도형 정책으로서 인성교육 실현방안이 설계되고, 이에 대한 지원체계 구축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지난 2월 6일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을 주도한 정의화 국회의장이 “과거와 달리 관이 나서서 일이 되는 시대가 아니므로 시민운동·국민운동을 통해 인성교육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최근 들어 인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일류대학에 가고 일류직장을 가지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는 도식적 결과주의와 뿌리 깊은 학벌주의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는 없다. 따라서 단순히 정부의 정책적 수단만으로는 인성교육의 확산과 정착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인성교육의 확산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인성교육진흥법의 제정과정과 같이, 민간이 인성교육 확산을 주도하면서 이러한 노력에 대한 지원을 정부와 정치권이 법과 제도로서 뒷받침하고, 이것이 다시 민간운동의 확산으로 환입되는 구조를 꾀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학교뿐만이 아니라, 가정 및 사회 각 부문이 인성교육의 당위성과 실천활동에 대한 인식이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한국교총은 인성교육 정착의 출발점으로 과거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에 대비되는 말하자면 학사모일체(學師母一體) 운동을 펼쳐 나갈 계획이다. 인성교육에 있어 교사와 어머니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학생을 사이에 두고 교사와 어머니가 하나 되어 노력하면서 인성교육의 착근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행령 제정과정에 충분한 여론 수렴과 반영이 이뤄져야 한다. 지난 2월 27일 인성교육진흥법 시행령 제정을 위한 첫 토론회에서도 이와 관련한 여러 우려들이 제기되었다. 앞으로의 공청회 및 세미나 등의 과정이 형식적·절차적 과정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이러한 우려들이 해소될 수 있도록 실질적 논의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시행령 제정과정을 통해 인성교육에 대한 붐업(boom-up)을 일으켜 대국민·대사회적 공감대를 다시 한 번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성교육 정착은 교육부문만의 과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국가발전의 첩경이라는 절실한 인식을 확산시킬 계기로 만드는 것이다.
Ⅳ. 인성교육의 글로벌 패러다임 확장
다가오는 5월, 유네스코가 주최하는 ‘2015 세계교육포럼(World Education Forum 2015)’이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한국은 개최국으로서 인성교육의 확장된 핵심덕목으로 볼 수 있는 ‘세계시민교육’을 의제로 제안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금년 5월은 1995년 김영삼정부가 발표한 5.31 교육개혁의 20주년이 되는 달이라는 큰 의미가 있다. 이에 발맞추어 민간단체로서 한국교총과 인실련은 같은 달 ‘2015 인성교육국제포럼(International Forum on Character Education)’을 개최하면서, 5.31 교육개혁의 공과를 평가하고 인성교육으로의 범국가적 교육패러다임 변화를 위한 움직임을 이끌어낼 예정이다.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에 대한 독립적 법제를 구축한 국가로서, 각국의 인성교육의 동향과 사례를 공유하면서 국내 인성교육의 저변 확대와 인성교육의 글로벌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에 대한 재조명은 유독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움직임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이미 1993년 전국 규모의 인성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인성교육을 교육의 중핵가치로 가르치고 있다. 독일의 경우도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와 국가사회주의의 함정에 빠져 전범국가로 내려앉은 과거의 경험을 철저히 반성하며 사회적 인성을 교육의 최우선 목적으로 두고 있다. 싱가포르와 캐나다는 인성·시민교육을 정규교과에서 가르치고 있고, 이외에도 프랑스의 공화국(共和國)으로서 국가시민교육의 가치 강조와 핀란드의 범교과 인성교육 등 여러 국가에서 인성을 교육의 핵심가치로 가르치고 있다.


필자 역시 지난 2월 중순, 미국 교육부 및 교원단체(NEA 및 AFT), 인성교육연맹(CEP, Character Education Partnership), 월드뱅크(Worldbank) 등 교육 관련단체, 초·중등학교 및 대학교를 방문하면서 인성교육이 학교현장에 어떻게 스며들고 작동하는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필자가 방문한 학교 중 버지니아 페어펙스 카운티의 공립학교인 ‘콜빈 런(Colvin Run)’ 초등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의 5가지 가치(열정, 정직, 책임, 존중, 용기)를 강조하고 있었다. 학교의 모든 시설물과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인성을 기술(Skill)이 아닌 삶(Life)으로서 체화시키고 있는 등 지식으로서의 인성이 아닌 실천으로서의 인성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에 큰 시사를 얻었다.
Ⅴ. 결 론
인성교육을 위한 법률이 제정될 만큼 인성교육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여전히 인성교육이 우리 사회에 기반을 든든히 뿌리내리기 위한 과정은 지난(至難)할 것이다. 오랜 기간 인성을 강조해 왔지만 실제로는 상대적 지위경쟁과 교육의 수단적 가치에만 집중했던 우리 사회의 허상을 일거에 벗어던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타 정책에 비해 긴 타임래그(time lag)를 가지는 교육정책의 특성을 고려하여, 교육계, 지역사회 및 학부모, 정부 및 정치권 등 각계각층이 합심하여 우리사회에 인성교육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차근차근 한걸음씩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희망적인 것은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이라는 힘든 첫걸음은 이미 내딛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참고문헌
교육부 창의인재정책관(2013), 인성교육 강화 기본계획, 교육부
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2015), 학교 인성교육 구현을 위한 국가수준의 방향 탐색, 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 학술세미나 자료집, 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
서정화 외(2013) 인성교육 활성화를 위한 민간단체의 역할·기능 수행 방안,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교육정책연구소.
안양옥(2015), 한국사회의 위기와 교육의 역할에 대한 토론-한국사회의 위기와 교육의 역할 세미나 자료집, 한국대학총장협의회·한국학중앙연구원.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2014), 인문학 진흥과 문화융성을 통한 한국적 인성 정립 방안, 인실련 창립 2주년 기념 세미나 자료집.
정창우 외(2013), 학교급별 인성교육 실태 및 활성화 방안, 교육부.
정창우(2014),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인성회복방안-위기의 한국사회 인성에서 길을 찾는다, 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 세미나.
천세영 외(2012), 인성교육 비전 수립 및 실천방안 연구, 교육과학기술부.
현주 외(2013), 초·중등 학생 인성교육 활성화방안 연구(Ⅰ), 한국교육개발원.
권형진, 인터뷰-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 교육정책. 교수신문, 2015.1.19.
김기중, 인터뷰-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 사회성·애국심도 인성에 포함,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줘야, 서울신문, 2015.1.20.
교육정책네트워크 정보센터·해외교육동향(http://edpolicy.kedi.re.kr/)
▲ TOP 싸이월드 공감
서울특별시 서초구 바우뫼로 1길 35(우면동) 한국교육개발원 keditor@kedi.re.kr Tel.02-3460-0319 Fax.02-3460-0151
Copyright ⓒ 2011, KEDI.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