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여정, 새로운 실크로드를 찾아서
- 러시아 · 우즈베키스탄 ·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김윤기 / 경기 소사고등학교 교장 싸이월드 공감
Ⅰ. 올해로 대한민국은 광복 70주년을 맞았다
마음 놓고 햇볕도 쬐지 못하던 암울한 시절에서 햇살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된지 일흔 돌을 맞았다. 그렇다고 양지바른 언덕에서 근심 없이 느긋하게 햇살을 누리듯 대한민국의 역사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남북 분단, 6.25 전쟁, 월남 파병, IMF 사태 등을 비롯하여 대내외적으로 크고 작은 시련이 있어 왔다. 그리고 지금은 이념과 지역 그리고 세대 간의 갈등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와 언론, 기업 및 국민 모두가 이번 광복절을 국민대화합으로 나가는 계기로 삼고자 힘을 모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경제대국으로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는 1945년 광복을 하기까지 일제치하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낸 애국독립지사들의 노고로부터 출발한다. 특히 나라 잃은 설움에 해외를 전전하던 온갖 어려움을 겪은 동포들의 피와 땀으로부터 피어난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승만, 김구,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김원봉 등을 비롯해 독립을 위해 미국으로 중국으로 그리고 구소련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다. 자기 하나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 이 민족의 후손들이 자유롭고 떳떳하게 살아갈 터전을 되찾고자 모든 것을 던진 애국지사들. 중앙아시아 사할린을 비롯하여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에는 아직도 애국지사의 후손들과 수십만 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과거 소련에서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의 일원이 된 나라들에 살고 있는 고려인에 대해서는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단절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그들의 노고에 감사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Ⅱ.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
아직도 시골 어르신들은 러시아보다 소련이란 말에 더 익숙하다. 1991년 10월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들어섰지만 모스크바의 눈보라 치는 붉은 광장과 독한 보드카,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들의 맹주로서 기억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 소련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다.


사실, 20여 년 전만해도 소련(USSR)과 러시아(Russia)는 다른 의미이면서도 같은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약 70여 년 동안 러시아 지역엔 15개 공화국의 연방형태인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있었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는 세계에서 최초로 사회주의 정부를 달성하고, 이웃의 소수민족 국가들과 연방형태로 국가를 유지해 왔다. 그 후 고르바초프의 개방-개혁정책으로 소련이라는 나라는 사라지고 러시아연방과 과거 소연방의 일원이었던 15개 공화국 중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은 독립하여 별개의 국가를 이뤘고, 나머지 공화국들은 사실상 각자의 노선을 가고 있으면서도 느슨한 연방체제인 ‘독립국가연합’이란 정치적 실체를 만든 것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으로 구성된 독립국가연합 중 아제르바이잔은 1992년 10월 탈퇴하였다가 다음해 9월 복귀하였으며, 투르크메니스탄은 2005년 탈퇴한 후 준회원국으로 남아 있다. 그루지아는 2008년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탈퇴하여 지금은 10개국이 ‘독립국가연합’이다.


경제적으로 독립국가연합은 74년간의 소연방때 추진된 각 공화국간 산업의 특화 및 분화 정책에 따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현실 때문에 단일화폐의 사용, 자유로운 경제교류 등의 단일 경제권 형성을 지향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독립국가연합단일군 통수권에 의한 집단안전보장체제 구축을 표방하고 있으나, 핵무기 통제 및 통합군통수권의 주도권 다툼, 회원국 간의 빈부격차에 따른 경제개혁 조치의 부조화, 민족갈등 등으로 말미암아 독립국가연합의 존립기반이 굳건하지만은 않은 실정이다. 특히 나고르노-카라바흐 사태, 그루지아-압하지아 분쟁, 타지키스탄 내전 등은 아직 꺼지지 않은 화산처럼 언제 독립국가연합의 존립을 흔들지 모른다.


독립국가연합의 실질적 리더인 러시아는 엄청난 자원 매장량을 보유한 자원부국이다. 아울러 정신적, 문화적 잠재력과 우주분야을 비롯한 과학기술, 발레,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급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대 영토대국인 러시아는 21개 공화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푸틴 대통령 취임 후 러시아 전역을 7개 지역으로 나누고 전권대표를 파견하여 다스리고 있다.
Ⅲ. 러시아 교육제도
러시아에 최초의 교육기관이 세워진 때는 1631년 표트르 모길라가 키예프에 설립한 ‘모길라 아카데미’다. 이 학교에서는 문법, 수사학, 수학, 천문학, 음악 등을 가르쳤으며 정식 대학의 틀을 갖춘 러시아 최초의 대학은 1755년에 설립된 ‘모스크바 국립대학’이다. 러시아의 교육시설은 19세기 말 크게 확대되었다. 혁명 이전 러시아의 교유시설은 ‘김나지움’이라고 일컫는 중등학교가 200여 개 이었으며 초등학교는 약 8만 개에 이르렀다. 학교는 정부뿐만 아니라 개인이 세우기도 했는데,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와 체호프가 농민을 위해 세운 학교들은 아직도 유명하다. 러시아는 푸슈킨, 체호프, 톨스토이 등 세계 문학사에 획을 긋는 위대한 작가들을 배출했지만, 일반 대중은 문맹상태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1897년의 경우 남성의 29.3%, 여성의 13.1%만이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볼셰비키 혁명은 교육의 대중화를 가져왔고 1920년에 이르러서는 9-49세까지의 국민 중 54%가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레닌은 “기술적으로 잘 훈련된 사람 없이는 강한 산업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1920년 ‘문맹청산학교’를 세웠다. 동시에 농민과 노동자들로 하여금 대학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19년에는 ‘노동자학부’라는 특별학교도 만들었다. 이로 인해 특별학교의 학생 수가 증가하여 1932-33년에는 609개의 특별학교에서 20만4,900명의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받는 등 대중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30년 시작된 초등의무교육은 1949년에 이르러 러시아의 모든 소년들을 대상으로 7년제로 확대되었다.


러시아의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포괄하는 교육제도는 ‘쉬콜라’라고 일컬어진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10년 교육과정 중 의무교육기간은 8년이며, 이중 7년간만 받아도 된다. 일반적으로 러시아의 아동들은 6-7세에 정규 교육기관에 취학하여 의무교육 기간이 끝나는 8학년(초급 4년과 중학교 4년)까지는 동일한 교육을 받는다. 9학년부터는 일차적인 진로선택을 하는데, 일반 고등학교 과정(2년)을 다니거나, 일반학과 특정분야 기술교육을 병행하는 기술학교 과정(테흐니쿰, 3-4년)으로 진학하기도 한다. 대체로 ‘테흐니쿰’이 일반고등학교에 비해 선호되고 있으며, 그 밖에 재능 있는 학생이나 신체장애자를 위한 군사학교와 특수학교가 있다.
러시아의 고등교육기관은 종합대학과 전문화된 특수대학으로 나누어진다. 특수대학은 법학, 경제학, 외교학, 의학, 교육학, 전기공학, 도시계획, 농학, 국제관계학 및 예술 분야 등의 전문 분야별로 세분화된 교육기관이다. 이들 기관에는 연구소 또는 아카데미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대학은 학·석사 통합 5년제 과정과 학사 4년+석사 2년 분리 과정이 있다. 입학시험은 매년 여름에 실시되며 경쟁률은 지명도에 따라 차이가 크다. 모스크바대학교, 모스크바 국제관계연구소, 모스크바 외국어연구소, 모스크바 문화예술연구소, 모스크바 연극·예술 학교 등은 평균 경쟁률이 50:1에 달한다. 수학기간은 보통 5년이며 마지막 해에 치러지는 졸업자격시험에 합격해야 졸업할 수 있다.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연금 또는 최저임금 수준의 보조금을 받으며, 일반 대학에는 야간대학과 우리의 방송대학과 유사한 자오치너 과정이 있는데, 러시아 학생의 절반 정도는 이런 과정을 통해 학·석사 학위를 받는다.


대학 졸업 후 보통 3년 과정의 ‘아스피란트(한국의 대학원 과정)’를 마치고 졸업시험과 논문이 통과되면 ‘칸디다트’라는 박사학위를 받는다. 우리와 달리 칸디다트 이후에 Post-Doc 과정에 해당하는 독트르(Doctor)를 취득해야만 정교수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은 오랜 기간 직장에서의 전문 연구 활동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Ⅳ. 실크로드의 여정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스스탄의 교육제도
1.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비단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민족구성은 몽골로부터 이동한 투르크계 민족을 주류로 이란계 민족과의 혼혈로 형성되었다. 수도는 타슈켄트이며 1개의 자치공화국과 12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동·서를 연결하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우리나라처럼 외부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00여 개 이상의 다민족 국가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는 2009년 기준으로 2,755만 명에 이른다. 우즈벡 혹은 외즈벡이라고 알려진 말은 튀르크어로 ‘자기 자신, 핵, 중심, 진짜, 순수한'이라는 뜻을 가진 Uz 라는 단어와 ’백부장‘의 뜻을 가진 bek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말로 ‘진짜 백부장’이라는 뜻이며, 우즈벡에 페르시아어 ‘stan'이 합해진 우즈벡키스탄은 ‘우즈벡인의 나라'라는 뜻이다.1) 구소련 시절 러시아어와 우즈벡어가 공용어였으므로 인구의 80% 이상이 우즈벡어를 사용하며 지식인층은 러시아어를 사용하였으나, 독립 이후에는 우즈벡어만 공식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우즈벡 간의 교역은 1993년부터 외환위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IMF에 이르러 대폭 감소하였으며, 2003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하고 있다. 우리의 주요 수출품목은 기계, 석유화학, 섬유, 전자, 철강, 자동차부품 등이며 농산물과 광산물(특히 우라늄)을 주로 수입하고 있다.


우즈벡의 교육제도는 소연방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구소련 교육제도에 기초하여 구미의 교육제도를 결합한 독자적인 교육제도를 갖추고 있다. 1997년 교육제도 개혁에 따라 [교육법], [국가인재양성 프로그램]이라는 교육법령을 통해 성인 문해율을 선진국처럼 99.7%까지 달성했으며, 교육기회의 남녀평등도 달성했다. 또한 2004년 5월 대통령령으로 [2004-2009년 학교교육 발전 국가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학제인 초등학교 4년, 일반중등학교 5년, 중등전문학교 3년의 12년제를 표방하였다. 초등학교와 일반중등학교를 합친 9년제 ‘일반중등학교’에서는 기초교육을 담당하며 3년제 ‘중등전문학교’에서는 전문직업기술을 습득하게 하여 취업을 하거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교육재정의 열악함으로 인해 교과서 무료 지급에서 2001년부터 교과서 대여시스템을 만들어 학생들이 싼 가격으로 교과서를 빌려 쓰도록 하고 있다. 또 학교시설(컴퓨터, TV, 실험 실습실, 스포츠 시설 등)의 부족으로 약 4분의 1의 학생들이 2-3부제 수업을 받고 있다. 97년 교육개혁안에 따라 10학년과 11학년의 2년제 완전중등학교를 3년제 중등전문학교와 중등직업학교로 전환하고, 이를 의무교육체제 안에 편성하였다. 중등전문학교는 ‘아카데미 리쩨’라 불리는데 전문지식의 향상을 통해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을 목적으로 하며, ‘직업 칼리쥐’라 불리는 중등직업학교는 학생들에게 일반 중등교육을 제공함과 동시에 한 개 이상의 현대적 직업기술능력 습득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즈벡의 고등교육기관은 총 66개(2008년)로 종합대학, 단과대학, 아카데미, 외국대학 분교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직 사립대학 없이 국·공립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가장학금으로 교육받는 장학생 비율이 30% 정도이며 갈수록 그 비율이 줄어들고 개인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가난한 계층 자녀들의 대학교육 기회가 제한됨으로 대학 진학률이 2000년 13%에서 2006년 9.8%로 하락하였다.


소련연방 시절 고려인동포들은 강제이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특유의 근면성과 교육열로 동포 2-3세 중에는 상류계층을 형성한 사람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우즈벡어 공용어 정책에 따라 동포 자녀들이 다니는 러시아학교가 줄어들고 있어 대학진학의 기회가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1992년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이 설치되고 한글학교와 한국문화센터 등을 통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타슈켄트를 포함해 전역에 한글학교 수만 120여 개나 되며, 학생 수도 만 명을 상회하고 있을 정도로 한글교육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
2.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은 세계 9위에 이르는 영토대국이나 인구는 2014년 기준으로 1,800여 만 명에 불과하다. 거대한 자원부국답게 석유, 천연가스, 우라늄, 금, 구리, 철광석 등 풍부한 부존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130여 종족으로 구성된 다민족·종교 국가다. 독립국가연합 국가 중 가장 개방적인 시장경제체제를 기반으로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 WTO 가입도 연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50대 경제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2007년 ‘새로운 세계에서의 신 카자흐스탄’이라는 대통령 연설에 기초하여 전 산업분야에 걸쳐 현대화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미국, EU 등 선진국들과 원유 및 가스 산업, 제조업 분야의 유치를 통해 실질경제협력을 구축하고 있다. 그 외에도 독립국가연합 국가들과는 ‘중앙아시아협력기구’ 및 ‘유라시아경제공동체’를 바탕으로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터키, 파키스탄, 이란 등 회교권 국가들과는 ‘비아랍 이슬람 지역 경제협력기구’를 통해 상호 경제협력 및 아프간, 이라크 재건 등을 통해 성장을 꾀하고 있다.
우리와는 1992년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실질적인 상호 경제협력을 추진함에 있어 상호 이해관계가 부합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중요시하는 것은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한국기업의 유치이며, 우리는 자원외교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에너지자원 확보라는 측면에서 소중한 투자협력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또 향후 대러시아, 대중국 우회진출기지 및 독립국가연합 지역의 경제거점이 될 전망이다.


카자흐스탄의 교육제도는 유럽 등 국제 기준과 일치하는 체제로 변화하고 있는데, 취학 전부터 한국의 초·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쉬꼴라(멕텝)에 이르기까지 무상교육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최근 사회가 다변화되고 교육의 다양화, 개별화, 민주화 등에 따라 사립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현 교육제도는 통상 6세까지 유치원에 다니고, 6-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1년 동안 의무교육을 받게 된다. 초등은 1-4학년까지이며, 17세가 되면 졸업시험이면서 고등교육기관의 입학시험인 전국연합고사(Unified National Test, UNT)를 치른다. 언어와 관련하여 학부모나 학생은 자신이 선택한 언어, 즉 러시아어나 카자흐어로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으며, 카자흐어를 선택할 경우 보다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대학은 구소련시절 국립대학 위주였으나, 최근 들어 사립대학이 증가하여 현재는 국립대학(33개)보다 사립대학(126개)이 더 많다. 또 유럽연합에서 교육체제의 구조조정 격으로 실시되었던 볼로냐 협약을 채택하여, 기존 석사-준박사-국가박사 체제를 벗어나 학사(BA), 석사(MA), 박사(PhD)로 개편하였다.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비율(주간 52.4%, 야간 0.3%, 통신 47.3%)에서 나타나듯이 통신교육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유능한 학생들을 위한 대통령 장학 프로그램(볼로샥: Bolashak)을 통해 석·박사과정뿐만 아니라 학부생들도 해외 교육기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장학제도의 혜택을 받게 되면 귀국해 5년간 전공분야의 국가기관에서 종사할 의무를 진다.
3. 키르기스스탄
중앙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키르기스스탄은 인구 550여 만(2010년 기준)에 수도는 비슈케크로 7개의 주와 2개의 특별시로 구성되어 있다. 국명은 ‘키르기스인의 나라’라는 뜻이다. 키르기스어와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1992년 우리와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산과 하천에 의한 지형의 변화가 많은 산악국이어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으나, 여전히 인구의 40%가 빈곤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국민소득은 2013년 기준으로 1,280달러 정도다. 1998년 독립국가연합 국가 중 가장 먼저 WTO에 가입하는 등 시장경제 도입을 적극 시도했으나, 대통령 친인척의 부정부패, 인구의 소규모, 여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지하자원 등으로 경제발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제도로는 구소련 교육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여 취학전 교육부터 초·중·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무상교육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초등 4년, 중학 5년, 고등학교 2년의 11년제의 교육제도를 가지고 있다. 독립 이후 키르기스스탄은 고등교육 확대정책에 따라 비약적인 대학교육의 기회를 확대시켰다. 1992년 대학 입학률이 14%였으나 2006년 43%까지 올라갔다. 매년 8월 1일 모든 대학에서 일시에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실시하고 있으며, 지원 대학에서 본고사 형식의 대학입학시험을 치른다. 따라서 여러 대학에 지원할 수 없으며, 지원 대학 및 학과의 출제방식이나 경향에 맞게 준비해야만 합격할 수 있다. 대학입학과 관련해 특이한 점은 매년 10학년이나 11학년 학생 중 우수학생을 각 주별로 한두 명 선발하는 제도다. 각자 자신 있는 분야의 주제를 선택하여 결과물이나 성과물을 제출하면, 전문가들이 선발하게 된다. 이렇게 선발된 학생들은 10학년이든 11학년이든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주제와 동일한 전공분야의 대학을 선택할 수 있으며, 대학을 다니는 동안 장학금 혜택이 주어진다. 주로 수학이나 물리, 언어, 역사 등의 분야에서 선발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한국교육원은 2001년 설립되었으며, 한글학교 운영 등 현지에서 한국어 교육 보급에 매진하고 있다. 비쉬켁 인문대학을 포함해 4개 대학에 한국어전공이 개설되어 있고, 8개 대학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Ⅴ. 한민족의 정체성을 찾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영광은 재현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제는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에는 30만 명 이상의 고려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구촌 어디에 살든 해외동포치고 고난과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고려인만큼 힘든 시기를 많이 겪은 동포도 없을 것 같다. 연해주 황무지를 개척하고, 강제이주에 따라 또다시 동토에서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중앙아시아 동포들. 이제 대한민국이 이들에게 햇살 같이 따뜻한 손길을 내밀 때다.
참고문헌
『러시아를 알면 세계가 보인다.』 신현동·장연수, 바보새, 2004
『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김호준 지음, 주류성, 2013
『재외동포 연계 교육개발협력 활성화 방안』 신효숙, KEDI, 2008
http://www.happycampus.com/doc/36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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