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직접 개입하는 스위스의 직업교육
정은수 / 한국교육신문 기자 싸이월드 공감
박근혜 대통령의 스위스 국빈방문을 계기로 양국이 직업교육 협력기반을 마련하면서 마이스터고 졸업생들에게 스위스에서 직업교육을 받을 기회가 열렸다.

지난 20일(현지시간)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과 스위스기계전자산업협회(SWISSMEM) 간에 체결된 ‘글로벌 기술인력양성’ MOU에 이같은 내용이 담겼다. 오는 2015년부터 주한 스위스 기업에서 채용한 마이스터고 졸업자 20여 명을 선발해 1년은 국내에서, 이후 2년은 스위스에서 직접 직업교육을 받도록 추진한다는 것이 산업통상자원부의 계획이다.

박 대통령이 스위스 직업학교를 방문하고 양국 간 교육교류 를 추진하는 등 스위스 직업교육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직업 교육으로 유럽 최저 청년실업률(6%)을 기록하고 있는 직업교육 강국 스위스의 위상 때문이다.
Ⅰ. 중학교 때부터 직업교육 경험
스위스에서는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초·중학교 단계의 진로·직업교육은 공식적인 ‘직업교육’ 체제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학생들은 고교에서 본격적인 전문기술 교육을 받기 전인 중학교 때부터 진로를 선택해 직업교육을 준비하게 된다.

스위스 학제는 주(州)에 해당하는 각 칸톤(Canton)마다 차이가 있지만 초·중학교와 고등학교로 구분된 큰 틀의 체제는 대체로 유사하다. 의무교육기관인 초·중학교는 취리히 칸톤의 경우 폴크슐레(Volksschule)로 불리며, 다시 초등과정인 프리마슐레(Primarschule)와 중학교 과정인 오베스투펜슐레(Oberstufenschule)로 나뉜다. 한 학교 안에 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이 다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그림1] 참조).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면 학생들은 진로를 정하는데, 일부는 바로 인문계고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Gymnasium)으로 진학한다. 이 과정은 중학교 졸업 후 진학하는 김나지움 과정에 비해 2년이 길어 장기김나지움(Langzeit Gymnasium)으로도 불린다.

김나지움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은 같은 학교 안에 있는 세쿤다슐레(Sekundarschule), 레알슐레(Realschule), 오베슐레(Oberschule) 세 가지 과정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세쿤다슐레는 가장 어려운 과정으로 교과내용을 심화과정까지 가르친다. 이 과정을 졸업한 학생들은 단기김나지움이나 세쿤다슐레 졸업자에게만 입학자격을 주는 직업학교로 진학한다.

‘실과학교’로 번역되는 레알슐레는 같은 교과를 가르치지만 기초과정 중심으로 진도를 더 느리게 나가면서 가르친다. 대신 지역 기업체에서 직업체험이나 인턴과정을 하며 진로를 탐색한다. 학생들은 세쿤다슐레 졸업 자격을 요구하는 학교로 진학할 생각이 아니라면 레알슐레를 택한다. 오베슐레는 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을 위한 과정이다. 소수 학급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일대일 교육을 받는다.

각 과정의 선택은 학생의 성적과 학생·학부모 면담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스위스는 학생의 성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독일과는 달리 학부모 면담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교사는 학생·학부모의 면담과 서신 등을 통해 최대한 희망 하는 과정에 진학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과정이 결정된 후에도 변경이 자유로워 학생들의 이동도 잦다.

중학교 졸업 후에 고교 단계의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할 준비가 안 된 학생들을 위한 가교학년제도 두고 있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본격적인 직업교육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제식 기술훈련을 받을 수 있다.
Ⅱ. 교육내용·교육직종도 기업이 결정
오베스투펜슐레를 졸업하면 본격적인 직업교육이 시작된다. 스위스 직업교육체제는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직업학교를 중심으로 한 고교 수준의 직업교육훈련(Vocational Education & Training, VET)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대 수준의 전문교육훈련(Professional Education & Training, PET)이다.

스위스의 직업교육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은 기업이 모든 과정에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고, 일자리로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는 스위스의 직업학교가 전통적으로 기업이 제공하는 도제훈련을 보완하는 기능을 해 온 역사적 배경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직업교육이 기업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VET는 중학교 졸업생의 68%가 진학하는 직업학교인 베루 프슐레(Berufsschule)와 7%가 진학하는 상업학교인 파크슐레 (Fachschule)에서 이뤄진다. 학교 외에도 견습 공장에서 전일제로 도제식 직업교육을 받거나 직업학교 입학준비를 위한 사전준비과정을 1년 다닐 수 있다. 사전준비과정에서도 도제식 견습이 이뤄진다. 스위스 직업교육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우리의 특성화고 또는 마이스터고에 해당하는 직업학교에서 하는 VET 교육의 내용과 직업교육 대상 직종의 선택에 기업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직업학교 교육은 기업 내 도제 훈련과 학교 내 교육이 연계된 이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실질적 이원제 교육의 정착은 직업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기술 위주의 교육을 가능케 하고 있다.

물론 우리 직업교육도 현장실습이 있지만 대부분 1~2학년에 학교교육이 이뤄지고 3학년에 현장실습이 집중된 반면, 스위스는 전 과정 동안 보통 주 1~2일은 VET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3~4일을 기업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기술 중심으로 도제식 훈련을 받는데 활용한다. 각 직업의 필요에 따라 도제일수를 줄이고 수업 참석일수를 늘리거나 풀타임 교과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도 있지만 2010년 기준으로 87.2%의 학교가 이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또 어떤 직종의 교육과정을 퇴출하거나 새로 도입할지를 직능협회와 정부가 상의하여 결정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수급과 직업학교 졸업생의 균형도 비교적 잘 유지된다. 그 간 매번 실제 기업의 수요와는 무관하게 특정 업종에 편중된 교육을 시행한 결과 학생의 실질적인 취업을 보장해 주지 못했던 우리 직업교육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직업교 육 직종만 기업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직업학교에는 약 250종의 VET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데, 기업들은 이 프로그램의 내용 구성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학교의 교과수업과 도제기업에서의 직업훈련이 병행으로만 교육프로그램 구성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각 직능협회에서 해당 직종에 필요한 기술을 정리하여 매년 학교와 도제기업에 교육내용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현장의 상황을 못 따라가는 이론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Ⅲ. 유연한 시스템, 진로고착 공포 없어
고교 교육프로그램은 3~4년제와 2년제가 있다. 연방정부 자격증(VET Diploma) 취득을 위한 3~4년제 VET 프로그램을 수료하면 취업을 하거나 전문대에 해당하는 PET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연방정부 인증서(VET Certificate)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2년제 과정을 이수하면 3~4년제 과정 입학 또는 대학학위과정에 진학할 수 있는 연방직업바칼로레아(FVB) 준비과정에 진학할 수 있다. FVB를 취득하면 입학시험 없이 스위스응용과학대학(UAS)에 입학하거나 스위스 주립대 또는 연방기술연구소 입학에 필요한 대학적성검사(UAT)를 치를 수 있다. 직업학교에도 일반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진로설계를 할 수 있는 과정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전문계고를 졸업하고 일반대로 진학할 수 있지만 정상적인 직업교육과 병행할 수 있는 별도의 과정이 설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처럼 2년제 과정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2005년 1,600명 이었으나 해마다 대폭 증가해 2011년에는 9,400명으로 늘었다. FVB를 취득한 학생의 비율은 2011년 기준으로 VET 수료학생의 13.2%다.

고교 단계의 직업교육을 마치면 고등직업교육, 즉 전문교육훈련(PET)을 받을 수 있다. 고등직업교육은 전문대와 국가시험으로 나뉜다.

PET 칼리지로 분류되는 전문대의 수업은 일반 대학수업의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풀타임 과정의 학생들은 20%의 기간을 직업훈련생으로 보낸다. 파트타임 과정의 학생들은 직장에서 주당 표준근로시간의 절반 이상 동안 근무를 해야 한다. 풀타임은 2년, 파트타임은 3년 내 이수하도록 돼 있다. 졸업하면 PET전문대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2012년 기준으로 8개 영역에 52개의 PET 칼리지 학위과정이 개설돼 있다.

국가시험은 연방 기술시험(Federal PET Diploma Examination) 과 연방 고급기술시험(Advanced Federal PET Diploma Examination)으로 나뉜다.

연방 기술시험은 주로 특정 분야에서 일정 기간 전문적인 경험을 쌓고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기 원하는 경력자를 대상으로 한다. 시험에 합격하면 연방PET자격(Federal PET Diploma)을 취득한다. 이 자격은 연방 고급기술시험을 치르기 위한 요건이 되기도 한다.

연방 고급기술시험은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충분히 축적하고 경영전문직 준비를 하려는 경력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물론 합격 시에는 고급 연방PET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이처럼 스위스는 직업학교부터 집중적인 직업교육을 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직업교육을 선택한 고교과정에서도 직업교육 트랙과 대학진학 트랙을 오갈 수 있는 경로를 열어 놓고 있고, 직업교육을 받은 기술자를 위한 평생교육, 자격·학위 취득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유연한 직업교육체제가 학생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직업교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Ⅳ. 기술직 대우 대졸자 못지않아
스위스의 성공적인 직업교육에는 독특한 직업교육체제도 기여했지만, 사회적 여건 성숙이라는 요인이 그 바탕이 되고 있다.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전문교육과정까지 이수하면 일부 고소득직종을 제외한 대졸자와 비슷한 연봉을 받기 때문이다.

직업학교 기간에도 도제기업에서 보수를 받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직업학교가 유리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기업과 학교의 효율적인 연계도 기본적으로 이를 위한 시스템이 있기에 운영이 가능하다. 스위스는 직업교육체제 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직업교육을 관장하는 전문교육 기술청(Federal Office for Professional Education and Technology, OPET)을 별도로 두고 있다.

또 칸톤별로 VET/PET 사무소를 두고 있어 이를 통해 도제기업과 도제일자리 수요를 조정하고 있다. VET/PET 칸톤 사무소는 각 지역의 조건에 맞게 특화되어 있고, 지역산업체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어 적합한 도제일자리를 찾는 학생에게 일자리 알선과 개별 멘토링까지 제공하고 있다. 칸톤 사무소는 이렇게 학생과 기업 간의 도제훈련 수요 중개역할을 할 뿐 아니라 기업의 도제교육 활성화를 위한 재정지원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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